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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꾹꾹 참으며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잘 아는 도연명(陶淵明)은 중국 진(晋)나라 때 시인이다. 그는 나이 40이 넘어서야 겨우 작은 고을 팽택(彭澤) 현령(縣令) 감투를 썼다. 그러나 석 달도 안 돼 사표를 쓰고 낙향했다. 이유는 이랬다. 어느 날 자신보다 높은 군독우(郡督郵)가 나오는 날 참모가 ‘의관을 갖춰 입고 맞이하라’고 하자 ‘내가 오두미(五斗米)를 위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훌훌 떠났다. 그때 지은 시가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오두미는 쌀 다섯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2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당시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지만 도연명은 ‘쌀 다섯 말 월급’ 받으려고 ‘하찮은 자에게 머리를 숙이겠느냐’는 나름의 기개를 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지금같이 월급을 생존을 위한 소득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 속에선 그것이 오만인지 오기인지를 따져 볼 수 있다. 하지만 월급을 재화로서의 값어치를 따지기 이전에 그 값을 하는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도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한 리서치 회사의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보면서 우연히 연상(聯想)해 보았던 내용이다.

조사는 직장인 중 절반이상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받는 월급에 비해 불합리한 질책과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 내용에는 질책과 지시를 받은 직장인 중엔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고, 직급은 하급 직원보다 중간 직급이 더 많다는 것도 있었다. 불합리한 질책이라고 느껴지는 유형으로는 ‘상사가 잘못한 것인데 팀원들이 같이 질책을 받는 경우’가 절반가량으로 가장 많았다. ‘다른 직원과 근거 없이 비교하는 것’(31.8%), ‘같은 잘못을 했는데 나만 혼나는 것’(27%)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관심을 끈 사항은 불합리한 질책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일단 참는다’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참는다’는 것에 매우 익숙해 있지만 그 참는 속마음이 어떤가에 대해선 남들은 모르기 일쑤다. 심지어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사이에도 ‘강 건너 불’일 때가 많다. 직장은 물론이고 가정 등 주위의 모든 환경이 우릴 참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뿐이어서 더욱 그렇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고, 사람마다 인식과 욕망이 다르기에 상충(相衝)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 도연명처럼 참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참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서로 역할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참지 않는 사람들은 늘 안 참고, 참는 사람들은 늘 참는다. 참지 않는 사람들은 못 참겠다고 말하면서 안 참는다. 그들에게는 늘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참는 사람들은 그냥 참는다. 그들이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봐주고 염려해주는 사람도 없지만 속내가 다 타들어가도 참을 때까지 참는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잘 모를 때가 많다. 심지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참는 사람에게 적반하장일 때도 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일 경우는 특히 심하다. 지난해 개봉된 ‘창수’라는 영화가 있다.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렇지. 내 맘대로 사는 남자가 없으니까. 억울해서 폭발할 것 같아도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자식들 때문에 억누르고 산다. 참으면서 하루하루 넘기는 게 남자들이다. 내 맘대로 사는 남자가 어딨나. 다 창수처럼 산다. 창수(愴壽), 슬픈 목숨.”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이걸 그냥 확~’ 그러고 이내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 ‘그저 좋게 좋게 넘어가자’며 마음을 삭인다. 자고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위안을 삼으며. 그런데 이상하다. 이럴 땔수록 복은커녕 마음속에서 천불이 일어난 다.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고 올라오며 가슴도 답답하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꾹꾹 참으며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뇌인다. 참아야할 때와 참지 말아야 할 때를 가늠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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