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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공직자 청문회, 완벽함을 요구하는 폭력

 

10남매의 장남인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어릴 적 기억인데, 아버지 월급으로는 스무 명 가까운 식구들 쌀을 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린 삼촌과 고모들이 이따금 보잘 것 없는 돈을 보태서 간신히 나머지를 해결하곤 했다. 그래도 때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돈을 빌리러 다녔다. 장손인 형은 기를 세워주느라 제쳐두고, 둘째인 나를 늘 데리고 다녔다. 집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조용한 어머니의 예법으로는 점잖은 집에서 여성이 혼자 나가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니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모두들 가난했지만, 그래도 좀 부유한 집들이 있었다. 그 집 마루나 방에 앉아 어머니의 긴장한 얼굴을 보면서 난 어렴풋이 알았다. 가난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이웃 동네의 먼 친척이거나, 한 동네의 부유한 이웃들 집에서 난 빈부의 차이를 처음 깨달았다. 가난한 집 산골 소년인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보상심리였다. 어머니가 돈을 빌린 집의 아이들보다는 무조건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주눅 들지 않으려 했다. 비록 가난한 부모를 만나 돈은 없지만, 공부는 내가 훨 잘한다는 심정적 만족이 필요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 동갑내기인 그 집 둘째딸을 만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가서 최고의 여자 대학에 들어간 그 애는 여전히 부유하고 예뻤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처럼 주눅 들지 않았다.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부모와는 다를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애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 유년의 가난이 나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원망을 갖지 말자! 그래서인지 나는 가난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공직에 마음을 두지 않은 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말년에 시골 면장을 지냈지만 우리 가족은 늘 가난했다. 아버지의 급여가 올랐어도 가져가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 덕인지 면을 옮길 때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웠고, 선거 때면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동향 파악 겸 찾아왔지만, 살림은 언제나 팍팍했다. 그걸 보며 자랐기에 나에게 공직은 가난과 동의어였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쫓진 않았지만, 공직의 굴레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나는 자유로운 글쟁이가 되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일생을 공직자로 보낸 사람이 있다. 처신이 깔끔하여 마침내 공직자로서는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코앞에 두었다. 하지만 갑자기 사퇴를 했다. 그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었다. 칼을 휘두르는 막강한 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는 늘 모자랐을 것이다. 내 아버지처럼 박봉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그의 능력과 지위에 부합하는 소득은 없었을 테니까. 빛나는 자리의 주인공이었지만, 그의 가족은 공직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공직자에게 후한 급여를 지급하지는 않는다. 민간 부문의 성장으로 공직의 급여는 더욱 초라해 보인다. 고위 공직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안대희 검사장에게, 대법관에게 지위에 걸맞은 급여를 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변호사 수임료에 대해 비난할 생각이 없다. 싱가포르처럼 공직자에게 최고의 급여를 주었다면 다를 것이다. 평생 조그만 집에서 불편하게 지낸 가족들을 생각해서 번듯한 고급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싶었다는 그에게 나는 박수를 보낸다. 가장이란 식구들을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쏜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도덕성이나 능력에서 그보다 한참 아래에 있을 것이다. 청문회에 나왔다는 이유로 그는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뛰어난 사람에게 완벽하지 않다고 비난을 퍼붓는 청문회. 과연 누가 그 독배를 마실 것인가? 평생 가난했던 내 아버지가 생각나는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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