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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는데

 

오늘, 그들의 생각은 적어도 이럴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겠지’ ‘진정을 다해 다가섰으니 이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기다릴 수밖에’ 등등. 하지만 그들을 보는 유권자들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나부터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죽기 살기로 표심을 좇았던 그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 같은 번호만 찍어왔다. 그리고 때에 따라 설령 다른 번호를 찍었다 해도 내 일상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도 지난 13일 동안 또다시 온 사방 천지에서 어깨띠 맨 사람이 들쑤시고 다니는 걸 보았다. 마치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정치밖에 없는 것처럼 온통 여론조사 얘기와 후보 평가뿐인 고문(?)도 당했다. 그런가 하면 거리 곳곳에 나붙은 선거공보 속에선 저마다 뽀샵한 얼굴로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아양을 떨며 거의 일방적인 구애를 해댔다. 희박한 패를 잡고 한 알의 밀알이 되겠노라 읍소하는 후보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전과기록이 있는 후보, 세금 체납 사실이 있는 후보,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은 인물도 있었다. 이들 후보는 지역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것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선 인물들이 상당수였다.

유권자를 현혹시킨 각종 선거표어도 활개를 쳤다. 저마다 머리를 짜내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애걸을 했지만 국민들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들뿐이었다. 마치 1960년대 자유당 시절 명품(?)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 수 없다’가 생각날 정도였다.

때문에 선거 초반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나의 심사는 투표일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꼬였고 사전투표장에서 집사람과 작은 실랑이도 벌였다. 지난 5월30일 토요일이었다. 집사람과 함께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동네 주민자치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투표장에 도착해선 집사람만 가라고 하고 정작 나는 차에 있겠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한 집사람이 몇 번이나 물었지만 나는 ‘그냥’ ‘6월4일도 있는데 그때 하지’ 등등 핑계를 대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결국 ‘참 이상한 양반이네’ 하며 혼자 투표를 하고 온 아내가 ‘왜 그러냐’ 재차 물었지만 ‘아 글쎄 그냥이라니까’라며 톤을 높여 얼버무렸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나 같지 않을까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로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투표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잠시 전의 심통(?)이 겸연쩍게 느껴지며 마음을 다시 먹었지만 또 한편으론 ‘안도색기(按圖索驥: 그림만 보고 천리마를 찾지는 못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자포자기로 이어져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은 ‘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우리 삶의 향방을 가른다’며 참여를 호소해 왔다. 참정권의 중요성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 이 나라의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소중한 한 표로 보여 주어야할 때여서 그 호소는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따라 이런 글이 생각난다. “(중략) 마음 졸이던 그 주말의 긴장이 가시지 않았는지, 어제 저녁 일기를 쓰면서 또 엉뚱한 상상을 했다.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 딱 하루라면 어떻게 할까.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산에 가서 아름다운 봄 산을 마음 가득 담아 올 거다. 저녁에는 일기장을 정리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동안 즐거웠다고 전화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아침 일찍 투표하러 갈 것이다.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고 했다. 거미줄보다 힘없는 내 한 표지만 새로운 역사와 세상을 펴는 데 그 힘을 보태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살았던 그런 세상을 그대로 넘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한비야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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