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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위로보다 무관심이 필요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참 잘도 간다. 잡으려 해도 안 되고, 막으려 해도 바람처럼 쉽게 스쳐간다. 세월 이야기다. 차가운 저수지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광교산 입구 수변공원을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여름이 코앞이다. 덕분에 지난주 찾았던 광교산의 숲들도 짙은 녹음으로 뒤덮였다. 산행 중 느끼는 갈증으로 시원한 얼음물이 생각났고, 토끼재를 오를 때에는 아예 반팔 등산복까지 훌렁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온몸에 땀방울이 흘렀다. 세월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지나버렸다.

이런 세월의 흐름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산다. 때론 슬픔을, 혹은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헤쳐 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간간이 찾아오는 행복과 기쁨에 희열하고 보람에 뿌듯해 한다. 삶의 여정은 험난하지만 이 때문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을 위로한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사실 위로받고 싶은 게 어찌 자신 스스로만이겠는가. 세상에 위로받지 못할 사람도 없고, 위로받지 않고 살만큼 강한 사람도 없다는 말처럼 위로는 누구에게나 활력소요 치료약이다. 요즘같이 힘든 세상 속에선 작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물론 이런 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가해자요, 피해자라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더 많이 우리 곁에서 함께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잘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려 든다. 특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이에게는 섣부른 위로가 금물이며, 때론 이 같은 위로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해서 피해를 주고 치유되어 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 슬픔이 깊은 이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기도 하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심리학자 ‘오이겐 드레버만’이 지은 ‘한 생각 돌이켜 행복하라’는 책속의 말이 생각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치 전문가인 양 친구를 위로하려 든다거나 무의식적으로라도 애도하는 기간을 서둘러 마무리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겁니다. 슬픔을 정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위로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추운 눈밭에서도 꽃이 필 수 있도록 상처 받은 이의 곁을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라는 뜻이기도 하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구조돼 오늘(25일) 첫 등교하는 73명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보며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들이 57일 만에 첫 등교를 앞두고 학교 돌아갈 때 가장 무서운 것으로 ‘사람들이 아는 척 하는 것’을 꼽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위의 관심을 의식한 듯 원래의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가고 싶으니 ‘괜찮냐고’ ‘힘내라고’ ‘고맙다고’ 아무것도 말하지도 묻지도 말아달라고도 했다. 또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시선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고도 했다. 피어나는 꽃봉오리로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자신들을 보는 시선조차 두려워하는지 가슴이 아리다.

학생들이 적은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있어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요즘 여러 감정들이 순간순간 한번에 튀어나올 때가 많습니다. 눈물을 쏟다가도 배를 잡고 웃을 때도 있고 갑자기 우울해졌다가도 금방 웃기도 합니다. 혹시 거리에서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저희를 보더라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괜찮아졌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들의 심리표현에 비추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고 배려하며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그러진 감정과 두려움, 죄책감 등을 언어로 표출하는 순간 마음이 치유돼서 더욱 그렇다.

‘위로보다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그들에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트레버만의 말처럼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같은 어른들의 각별한 배려, 그것이 학생들을 진정 위로하는 일이며,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옆에서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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