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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공직의 존엄

 

고민은 한 통의 카카오톡에서 시작됐다.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에 몸 담고 있는 분에게서다. 지금은 연수과정을 밟고 있으니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성찰이 많은 까닭이리라. 단어 하나하나에서 고민이 묻어났다.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전문을 공개하면 이렇다.

‘오늘은 한국 관료의 책임의식과 국가 개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어요…. 왜 유능한 인재를 뽑아 놓고 정권마다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라고 할까? 공무원 조직만의 문제? 100만 공무원 중 관피아는 몇 명일까? 어려운 문제네요….’

충분히 그럴 것이다. 선비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공직으로 반평생을 보냈으니 세월호 이루 불거지는 관피아라는 불명예를 견디기 쉽지는 않을 터. 고민 끝에 답글을 보냈다.

‘관피아라고 싸잡아 매도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료를 선별해 내야겠죠. 그리고 유능한 인재도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거죠, 이런 저런 이유로….’

위로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 속내를 털었다. 호불호(好不好)가 강한 민족성 때문인가, 아니면 쉽게 달았다 식어버리는 습성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신상털기 재미 때문인가. 언제부터 우리는 경도된 사고와 행동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피아’도 어쩌면 유행(?)이 아닐까 하는 속물적 생각이 드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 정치생명뿐만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앗아간 경험이 많았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살자는 내겐 낯설다.

공직의 표상으로 불리는 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은 목민관의 자세를 이렇게 말한다.

‘일단 검소하고 청렴해야 하며 백성의 아픔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불의가 생기지 않도록 아전들을 늘 살피며, 벼슬을 이용해 착복하지 않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각오로 일하라.’

다산은 또 ‘목민관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우려면 반드히 청렴해야 하며, 청렴하려면 반드시 절약해야 한다. 절약은 목민관이 맨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어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자가 한 고을을 얻게 되면, 방자하고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서 절제하는 바가 없다. 닥치는 대로 마구 쓰니 빚이 많아지고 따라서 반드시 탐욕하게 마련이다. 탐욕하면 아전들과 공모하고, 아전들과 공모하면 그 이익을 나누어 먹으며, 그 이익을 나누어 먹으면 백성의 고혈(膏血)을 짠다. 그러므로 절약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맨 먼저 힘써야 할 일’이라고 못박는다.

더 무슨 말이 있어 공직의 존엄을 대신할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정약용이 57세 되던 해에 저술한 책이다. 신유사옥으로 전라도 강진에서 19년간 귀양살이를 하다 풀려난 1818년(순조 18)에 완성됐다. 부패가 극을 치닫던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 상태와 정치에 대한 죽비다.

훌륭한 사상은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 있다. 혜안이 있어야 가능한 일 되겠다. 다산이 언급한 목민관의 자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지당하다. 목민관(고위 공직자)이 절약해야 하는 까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슬퍼진다. 조금 확대해 소위 사회의 권력기관이라고 불리는 조직에 있는 자 가운데는 또 몇이나? 절망수준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면 카카오톡을 보낸 그 공직자 같은 사람 때문일게다.

카카오톡은 그의 답과 함께 끝났다. ‘그렇네요….’

사려깊은 행동과 넘치는 유머 감각으로 후배 공직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에게 ‘공직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이 시기에 준엄하다. 그의 고민이 부디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공직자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연수가 끝나고 그는 제2의 공직을 시작할 것이다. 그의 짧지만 깊은 고민에서 백성과 농민과 농업 정책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공직의 존엄은 또 권위는 백성의 눈높이와 함께할 때 존재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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