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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매미와 배롱나무

 

매미는 여름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여름의 한복판이다. 매미는 왜 그렇게 치열하고 시끄럽게 울까? 7년여를 땅 속에서 지내다 겨우 7일 정도 세상 밖으로 나와 살다가 죽는 게 서러워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매미는 집도 없이 나무의 수액이나 이슬처럼 맑은 것만 먹고 살기 때문에, 예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청렴한 선비들의 덕을 지닌 곤충으로서 사랑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임금과 관료들이 관청에 출근하여 공무를 볼 때 머리에 쓴 갓을 익선관이라고 불렀는데, ‘익선관’(翼蟬冠)의 익은 날개, 선은 매미, 관은 갓을 뜻하는 한자어로서 매미의 날개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갓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에 임금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이 매미처럼 청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매미의 날개 모양을 한 갓을 쓰고 일했다는 것이다.

배롱나무는 여름을 상징하는 나무다. 도심의 주택이나 빌딩의 정원수로 사랑받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여름 들판에서도 진분홍 꽃이 핀 배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6월 말에서 7월 초의 한여름에 진분홍, 보라, 그리고 하얀색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붉은색 꽃이 100일가량 오래간다고 해서 백일홍나무 또는 목백일홍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배롱나무도 청렴을 상징한다. 자라면서 차츰 껍질을 벗어버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단아하고 강건한 줄기를 자랑하기에, 예부터 무욕과 청렴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찰이나 서원, 관청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동래정씨의 시조를 모신 부산 화지공원에는 800년 된 천연기념물 배롱나무가 있다. 율곡 이이를 기념하는 강릉 오죽헌 마당에는 600년 된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서애 류성룡의 안동 병산서원에도 400년 된 배롱나무들이 서 있는데, 청렴과 결백을 바라는 선조들의 뜻에 따라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리라.

그런데, 매미와 배롱나무를 통해 수백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주고자 했던 가르침을 아직도 우리는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선조들의 가르침을 깨우치지 못한 대가는 참으로 참혹하다. 지난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태로 250명의 앳된 고등학생을 포함한 304명의 목숨이 바다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대참사 이후 소위 ‘관피아’ 논란이 뜨겁다. 공무원의 신분과 사명을 망각하고 기업체나 이해관계자들과 결탁한 ‘관피아’들이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눈멀어 노후한 선박의 안전 검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형 인명사고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작금의 ‘관피아’ 논란은 세월호 사태로 촉발되었지만, 이 같은 논란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소위 ‘원전마피아’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났던 게 바로 1년 전이었다. 자격미달의 부실 부품을 원자력발전소에 납품했는데도 그것을 눈감아주고 뒷돈을 받은 공기업 고위 간부의 사리사욕 때문에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나라의 곳간을 책임져야 할 세무 공무원이 소위 업자들과 결탁하는 바람에 국고로 들어가야 할 세금이 개인 주머니로 흘러들어가는 사례도 드러났다. 국민들 앞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직자와 공기업의 간부들이 오히려 물을 흐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뛰어난 저술과 실학정신 때문만은 아니다. 목민관으로서의 청렴한 자세와 솔선수범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지금껏 후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다산은 “공정과 청렴으로 지성껏 봉사하겠다”(공렴원효성·公廉願效誠)는 오언율시를 지어 공직자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산은 이를 평생 실천했다.

이 무더운 여름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가 미천한 곤충 매미에게서 한참을 더 배워야 한다. 말 못하고 간지럼 많이 타는 배롱나무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산의 정신을 이어받아 의사결정의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고, 모든 의사결정과 관련된 기록을 남기고 이를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소위 ‘김영란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서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관행도 엄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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