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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방학맞은 아이들 추억은 언제 만들까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 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 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 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 잎이 돋고 물 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 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 대면 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 점점 무거워져 오는 눈꺼풀 위로 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박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정일근 시인의 ‘흑백사진-7월’이란 시다. 도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방학때면 꼭 가는 시골 외할머니댁 덕분에 여름에 대한 향수가 유난히 많다. 그래서 ‘흑백사진 7월’이란 시도 무척 좋아한다. 이맘때가 되면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의 추억을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펼쳐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작로 옆으로 늘어서 있던 키큰 나무들 사이로 한가롭게 드나들던 바람의 살랑거림, 한창 자란 볏잎을 내리 쬐는 햇빛과 열기, 물장구 치고 노곤한 몸으로 돌아와 누운 원두막의 시원함, 그곳에서 빠진 낮잠의 달콤함 등등 지금도 손에 잡 힐 듯 생생하다.

동네어귀 텃밭에 네 기둥을 세우고, 2~3미터 위에 평상 같은 걸 걸쳐놓은 뒤 허름한 나무계단인 사다리를 놓은 원두막. 지붕은 짚으로 덮고 사방은 보릿짚이나 밀짚을 엮어 위아래로 열고 닫히게 되어 있는데, 더우면 막대기로 버티어 열 수 있었다. 이런 원두막은 땅보다 높아서인지 바람이 항상 불어 서늘했다. 원두막 밑으로 봉지씌운 포도나무들의 행렬과 텃밭의 참외,오이덩쿨도 정겨움을 더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제일 잘 익은 놈으로 갈증도 달래고 혀를 호강시키기도 했다. 어느날 장대비라도 오면 자욱한 안개가 끼고 사방이 온통 빗소리에 뒤덮힌다. 그리고 곧 비 그친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뭉개구름이 넓게 퍼지면 마음마저 싱그러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공부에는 담을 쌓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뛰어놀고, 냇가에서 고기잡이와 물놀이를 하면서 신이 나게 놀았던 시절, 중년을 전후한 세대들이 비슷하게 간진하고 있는 행복한 여름방학의 추억이다. 나는 그래서 서울 집에 돌아오면 실컷 논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개학을 며칠 앞두고 숙제를 벼락치기로 몰아서 하곤 했다. 특히 방학숙제로 내주었던 방학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하루 이틀만에 다 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또 일기를 한 번에 몰아서 쓰기 위해 며칠 전 일을 기억해내려 고민도 하고, 때로는 일기가 아닌 창작(?)으로 일기장을 채웠던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기억을 하며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방학에 대한 기억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지금처럼 방학기간 내내 아이들에게 공부에 시달렸던 기억만 남도록 한다면 그 책임은 ‘부모들일까’ 아니면 ‘기형으로 변해버린 사회구조 일까’하는 자문(自問)과 함께. 내일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덩달아 부모들의 휴가철도 겹친다. 본격적인 휴식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 반가우면서 고민도 된다는 부모들이 많다. 그놈의 공부 때문에 온전히 시간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라고 한다. 날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모니터의 열기 속에 빠져 사는 아이들. 잠시 여기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것만 해도 휴식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마음도 몸도 따로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생애의 중간도 아니요 끝도 아니요, 꼭 앞에 두셨다’고한 어느 철학자 이야기처럼 인생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도록 올 방학만큼 그들에게 돌려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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