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숨n쉼]태양을 피하는 방법

 

지나치게 더운 날씨에서는 일상적인 활동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외부 기온이 상승해 심한 더위를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약해져 질병에 걸리기 쉽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오래 노출되면 일사병에 걸리기도 한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열대야로 힘든 한여름 밤은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더위 피하기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문화 전반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다. 〈삼국유사〉에도 여름철에 서늘한 곳을 찾아 피서를 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관리들에게 삼복더위에 3일의 휴가를 줬고, 이 기간에는 공사를 금하게 했다. 조선 때에도 신하들에게 얼음을 나눠주는 법이 정해져 있었다.

옛 선조의 피서법

조선시대 교산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구양수’의 시구절로 피서를 인용한다. “한평생 마음과 힘을 다한 책 천 권에 있고/만사는 술 한번 진탕 먹으면 사그라지네.” 이 시구로 ‘책 읽기’와 ‘술 마시기’라는 피서의 방법을 제시한다. 당대 석학이지만 시대의 이단아였던 허균은 피서하는 법을 〈성소부부고〉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집에는 옛날 장서가 1만여 권 있는데, 그 중에는 내 손으로 직접 베낀 책이 많다. 그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있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보고 싶은 책 수십 권을 가져와서 문하생 등을 시켜 옆에서 읽게 하였는데,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그 전에 내가 술 빚는 법을 한 가지 알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3일 만에 술을 익히는 법으로 색깔은 동수(潼水)나 예수(澧水)와 같고, 옥우(玉友)라는 술보다 못하지 않다. 언제나 이 술을 저녁 무렵 서늘할 때 세 잔을 마시면 기분이 거나해졌다. 독서로 피서하는 것이 정말 하나의 좋은 방법인데다 이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 옛 선조들은 책 읽기란 낭독, 즉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요즘처럼 묵독, 즉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것은 근대에 와서 비로소 시작된 책 읽기이다. 낭랑한 목소리로 책 읽어준다면 어느 틈인가 책 내용에 빠져든다. 그리고 더위는 어느새 저만큼 물러나 있을 것이다.

제철 과일로 피서하는 법

여기에 여름철 과일을 먹는 것만큼 좋은 피서법도 드물다. 우선 자두는 ‘오얏’이라고 하는데 여름철에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기에 늘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남은 양을 확인하게 된다. 옛 문헌에서 보면 자두를 평하여 맛이 박하고 모양이 작다고 했다. 지금 자두 맛은 근대 이후부터 개량된 품종이다.

한 입 베어 먹는 자두의 맛은 참 맛있다. 신 맛을 좋아하는 이는 이 맛을 잊지 못한다.

다음은 아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다. 살이 연하고 수분·단맛·향기가 많아 여름철 생과로 널리 먹는 과일이다. 유달리 복숭아는 우리 민족에 있어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전설에서 유래된 장수의 의미로 ‘천도복숭아’는 천상에서 열리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수하는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맛을 느낄 만큼 충분히 한 입 베어 먹는 복숭아의 맛은 더욱 맛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수박도 여름철에 대표적 과일이다. 한자어로는 서과(西瓜)·수과(水瓜)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구창·방광염·보혈·강장 등에 쓴다.

잘 익은 수박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으면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여름철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가꾸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기 좋게 잘 깎아 놓은 참외는 달콤한 맛이 그만이다. 이렇게 한 여름의 피서는 과일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크게 한 몫을 한다.

아무리 무더위로 여름밤에 잠을 설쳐도 속담처럼, ‘말복 열흘 후엔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현명한 독서로, 때로는 적당하게 기분 좋은 음주로, 그리고 달콤하고 시원한 제철 과일로 태양을 피해보자. 힘차게 여름을 이겨보자.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