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숨n쉼]탁족(濯足)과 독서(讀書)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인파 소식이 뉴스에 등장했다. ‘사람 반 물 반’인 그리 쾌적하지만은 않을 바닷가. 그래도 피서객들은 무더위를 날려 보낸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살인적인 습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이 한여름의 일상 공기이니 이 상황만 벗어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실내에서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라도 쐴 수 있다지만 문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그야말로 냉탕과 열탕을 번갈아 오가는 꼴이니 여름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러니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는 해수욕장은 최고의 피서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물속에서 활개를 치며 물놀이하는 데에 별 취미가 없을뿐더러 구름처럼 운집한 사람들의 열기에 섞이는 것도 편하지 않아서 휴가철 성수기에는 유명 피서지를 찾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여름나기의 기억 역시 특별할 것들이 별로 없다. 무료함을 달래느라 집어든 1년 치 분량의 책읽기와 낮잠이 대표적인 여름 방학의 소일거리였다.

우리 선조들은 이 뜨거운 여름을 어떻게 쉬어 갔을까? 다산 정약용은 시를 지어 여덟 가지 피서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소서팔사(消暑八事)’, 더위를 몰아내는 여덟 가지는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소나무 단(壇)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이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매미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매미소리가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비가 적게 내려 매미의 유충이 땅을 뚫고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데, 도심의 매미소리는 지나치게 맹렬해서 소음처럼 느껴지던 탓에 청량감이 많이 사라지긴 했다. ‘달 밝은 밤 발 씻기’는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도 유용한 피서법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이경윤(1545~1611)이 그린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에는 한 선비가 바위에 앉아 웃옷을 풀어헤친 채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탁족(濯足)’ 피서법이다. 산 속 개울가 나무 그늘 밑 바위에 앉아 웃옷을 풀어헤치고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시중드는 동자가 시원한 술 한잔 건네주는 장면이 보는 이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나물 먹고 배불러서 손으로 배 문지르고, 오사모 젖혀 쓰고 용죽장 손에 집어 돌 위에 앉아 두 다리 드러내어 발을 담근다. 시원한 물 한 모금 쭉 뿜어내면 불같은 더위가 저만치 도망을 가고, 먼지 묻은 갓끈도 씻어낸다. 휘파람 불며 돌아와 시냇바람 설렁설렁하면 여덟 자 대자리에 나무베개 베고 눕는다…’ 죽림칠현으로 알려진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의 탁족부 일부이다.

선인들은 또 독서삼매에 빠져 더위를 잊기도 했다. 선조 때 문신 윤증(尹拯)은 자신의 시로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라 했고, 허균(許筠)은 ‘한정록’에서 ‘독서로 더위를 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거기에 술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라 했다.

탁족 즉, 발 씻기는 건강에도 매우 좋다고 한다. 발을 주물러 자극하고 이완시키면 면역력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발에 온몸의 경혈이 몰려 있어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자연의 생명들은 가장 활발하게 성장을 하는 계절이지만 사람들은 견디는 것조차 힘든 이 더위를 피하며 쉬어가야 할 시기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처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지쳐 쓰러지면 안 하느니만 못 하다. 올 여름은 강수량이 적어 계곡의 물줄기도 변변치 않다하니 집에서 얼음물에 탁족하며 못 다 읽은 책 꺼내어 읽다 졸리면 낮잠 자고... 조용히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가 올 여름 필자의 피서법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