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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한국 등대의 역사를 다시 쓴다

 

등대가 예술 작품과 만나면 사랑과 희망, 외로움과 이별과 같은 상반된 이미지와 결합한다.

1968년작 신영균, 문희 주연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연인의 아이를 홀로 키우는 문희가 사는 마을로 묵호 등대마을이 설정된다. 이 작품에서 등대는 문희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장치이다. 1997년 양조위와 장국영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해피 투게더’에 나타나는 비글 해협의 등대는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주는 희망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작품 속의 등대는 이처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존재이지만, 한국 역사 속에 등장하는 등대는 근대화의 상징이면서 부끄러운 역사를 간직한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 등대로 알려진 팔미도 등대

한국 최초의 등대는 1903년 만들어진 인천 팔미도 등대이다. 1960년대 이후 개방적이 경제 체제를 성장 동력을 삼은 시대에 먼 바다로 화물을 실고 나가고 들어오는 화물선의 안전을 지켜 준 것이 등대였다. 그래서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은 등대를 해양의 상징으로 여긴다. 바다의 도시인 부산이 등대를 부산의 상징으로 삼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팔미도 등대로 상징되는 한국근대사 상의 등대는 부끄러운 기억을 지니고 있다. 한국사상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는 우리의 자주적인 판단보다는 일본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876년 개항 이후 많은 선박을 조선에 보낸 일본은 자국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조선 정부에 등대를 세울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선정부로서는 조선의 선박보다는 일본 선박 이용도가 높은 등대 건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다 1903년 건설한 등대가 팔미도등대이다. 그래서 해양민속학자 주강현은 등대를 ‘제국의 불빛’이라고 표현하였다. 한국 역사상 등대는 한국 해양 발달을 상징이지만 동시에 식민지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 있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조선후기 등대 건립 자료를 찾다

지난 1년간 50년 이상된 등대 46개와 수천 점의 등대 유물, 기록물을 조사하였다. 해양수산부의 의뢰를 받아 건축과 역사 등 여러분야 학자와 팀을 짜서 등대의 문화재적 가치를 조사하고 활용방안을 연구하였다. 등대는 대부분 섬에 있고 정기선이 없는 섬도 다수여서 조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 과정에서 한국등대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자료를 만났다. 한국 등대의 시작을 조선후기인 1675년에서 1678년까지 올릴 수 있는 자료이다. 단서는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 갔을 때 담당 직원이 보여준 사진이었다. 1678년 조선정부는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부산에 왜관을 조영한다. 왜관 조영 공사는 1675년부터 시작되었다. 사진은 완공된 부산 왜관을 그린 회화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부산 왜관의 선창에 등대 형태의 건조물이 항구 출입구 양쪽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선창은 배를 묶어 놓고 방파제 역할을 하기 위해 바닷가에 쌓아 놓은 오늘날 방파제 형태 돌무더기이다.

다음 날 부산시내 박물관과 도서관 자료를 찾아보니 같은 내용의 회화 몇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연구해보니 관련 문헌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 자료들이 수장고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박물관 전시실에 걸려있고, 공식 간행된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등대와 관련 지어 해석한 연구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부산 왜관의 선창 시설물이 등대로 밝혀진다면 한국등대사는 지금보다 연대가 228년 올라간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등대사의 시작이 일본 제국주가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한국에 요구하여 만든 것이라는 어두운 식민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만간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의 평가를 받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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