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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교황 방한이 남긴 것

 

1987년 체제는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1987년 체제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로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게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우리 사회에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경실련이 1988년에 태동됐다는 것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형성은 이 땅에 다시는 권위주의 체제가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정치치제 중,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을 가장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권력구조라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효율적일 것 같지만 이것은 독재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독재의 청산은 곧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을 의미하고, 이는 시민사회의 형성을 통해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권위주의 체제의 청산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즉, 급격한 민주화 과정 속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분명 청산했지만, 권위주의와 함께 우리사회에 필요한 권위마저 사라지게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급격한 경제발전 때문에 경제 정의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자조석인 비판을 하지만, 권위주의 청산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권위가 사라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과거에 존재했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을, 과거에 존재했던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과 동일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그나마 존재했던 우리 사회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스스로 파괴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 사회의 권위를 가진 존재마저 자신의 이념적 잣대나 자신의 선호에 의한 진영 논리로 깎아내리거나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 사회에 권위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회에서의 권위는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고, 그 어려움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권위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취임 이후 자신이 선택한 첫 방문지로 우리나라를 골랐다. 아시아 지역으로서도 최초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왜 우리나라를 첫 번째 방문지로 선택했는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로 미루어 볼 때는, 한반도가 남북분단의 고통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번 교황의 방한으로, 우리는 잠시나마 ‘권위의 부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고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자, 세월호 특별법으로 아웅다웅하던 정치권도 잠시 싸움을 멈췄다. 이것이 바로 한 사회에서 권위가 왜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황에 의해 필요한 사회적 권위가 잠시 존재했지만 그가 우리를 떠나면 사회적 권위는 다시 사라지는 셈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사회의 권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권위가 단시간 내에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것을 진영 논리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역지사지, 그리고 객관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만 사회적 권위가 서서히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들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첫 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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