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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이범진 공사

 

여름방학을 이용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로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고 예술의 도시였기에 도시 자체가 역사이다.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불리는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으로 성당 자체가 박물관인 이삭성당. 이 두 곳에 소장된 미술품만으로도 세계미술사를 쓸 수 있을 정도이다. 핀란드만과 숲, 그리고 분수대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여름 궁전이 있다. 시내 중심부는 역사도시답게 199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러 수교 이후 많은 한국 관광객이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고 있다. 박물관과 유적지를 관광하는 한국인 중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제국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고, 그들이 감탄하며 둘러본 여름 궁전에서 제정러시아 니콜라이 2세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대한제국 외교관이 무너져가는 조국의 국익과 국권회복을 위해 애쓰다 쓰러져간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음을 아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지금부터 114년 전 1900년 여름인 7월 대한제국 러시아 공사 이범진이 이곳에 도착한다. 이범진은 도착 후 지금은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빼쩨르고프 궁전에서 니콜라이 2세에게 신임장을 제정한다. 러시아 공사로 근무하면서 이범진은 1903년 러시아가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고 조차하려고 하자 국익 수호 차원에서 이에 반발하다가 파면됐다가 복직되기도 했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해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이범진은 구국 활동을 계속했다. 1906년 헤이그 특사 활동을 지원했으며, 연해주의 한인 국권회복운동도 지원했다. 1908년 한인신문 해조신문이 창간되자 후원금을 보냈고, 연해주의 의병 활동 자금도 지원했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망하자, 이범진은 그가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나라를 위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좌절감과 일제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결했다. 이범진은 그가 고위 관료와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을 지냈으면서도 나라를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지는 길이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뻬스첼야 거리에 러시아 혁명 사적지로 보존되고 있는 아파트 건물이 있다. 아직도 훌륭한 외관을 갖추고 잘 보존되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 1층 벽면에 ‘이 건물은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이범진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가 집무하셨습니다’라는 현판이 부착돼 있었다. 이범진의 공사관 집무실 위치는 이 건물 3층의 5·6호실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잠시 거주했으며, 레닌 역시 1905년 혁명 후 한때 이 곳에서 거주했다. 이 건물에서 북쪽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이범진 공사가 묻혀 있는 묘역이 있다. 입구에는 이범진 순국비가 있어 찾기가 어렵지 않다. 공사관 건물에서 반경 7~8㎞ 이내에 이범진 공사가 재직 시 거주한 곳, 말년에 거주하고 순국했던 장소, 자결 후 시신이 안치된 병원이 있다.

국외에 많은 문화재가 있다. 14만점이 넘는다. 국외 문화재 중 외국에 약탈된 문화재도 많지만, 근대 이후 한국의 역사 무대가 확장되면서 형성된 근대문화재도 많다. 근대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다.

국외 근대문화재 중 러시아 공사관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지는 그리 많지 않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한제국 러시아 공사관을 러시아 정부와 협조해 기념관으로 꾸미고, 밀집돼 있는 이범진 공사 유적지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일이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지키려다 끝내 지키지 못하자 무한 책임을 지겠다며 목숨을 던져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준 국가지도자, 애국자에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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