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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아시아의 미래가 한류라고?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더 곪기 전에 터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류 지상주의가 공식적으로 철퇴를 맞았다.

지난 19일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보여준 문화적 역량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정책과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낸 치욕스런 사건이다.

개막식이 끝나자 아시아 언론과 네티즌들은 ‘최악의 아시안게임 개막식, 스포츠는 사라지고 한류만 남았다’며 비난과 혹평을 퍼붓고 있다.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는 단순히 운동경기를 통해 국가의 위상이나 국력을 과시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근대올림픽의 이상이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인 것처럼 승리보다 참가, 성공보다 노력의 가치를 앞세우고 있다. 개막식 행사는 자국의 문화예술 역량을 결집해 이러한 정신을 표현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지만, 아시아인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구호와는 다른 표리부동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개막식의 주된 내용이 한류라는 점과 행사 기획과 연출에서 드러난 문화적 후진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류’는 무비판적인 서구 중심의 대중문화 편식을 상당 부분 극복하게 했고 문화적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우리가 한류에 열광하다가 서구 제국주의와 팽창주의가 보여준 오만과 우월주의, 승자독식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몰염치한 태도마저 보인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민족의 근현대사는 바로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인류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악덕의 희생양으로 역사와 문화가 초토화됐던 쓰라리고 아픈 기억이다.

한류의 내용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보석처럼 찾아낸 정신적 가치의 표현이 아닌 상업적 자본이 독식하는 대중문화가 중심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싸이의 ‘말춤’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이 위대한 성공의 단물과 열매가 누구의 몫이 됐는지, 국민경제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차분하게 돌아보자. 우리가 꿈꾸는 한류의 결과로 다른 아시아인들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보면서 비빔밥과 김치가 그들의 주식이 되고 한국의 문화가 일상을 지배하기를 꿈꾼다면 정말 꿈 깨야 한다.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하고 청바지를 입으며 힙합음악에 빠진다고 해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개막식 행사의 기획과 연출은 정말이지 창피한 수준이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구성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아리랑과 조수미 외에는 내세울 것이 대한민국에 그리 없는지, 우정총국과 철도 부설의 역사를 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구성에 어떻게 연결시켜야할지 지금도 당혹스럽다. 개막식의 주제 ‘45억의 꿈, 하나 되는 아시아’가 한류스타를 내세워 ‘한류 대동아공영’을 말하는지 의구심마저 생겼다. ‘노래하라’로 시작되는 아시아드의 노래가 ‘달려라, 뛰어라, 던져라, 맞서라, 일서서라’며 목에 힘줘 외치는 모습은 전체주의 사회의 구호처럼 느껴질 뿐, 희망과 감동 없이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구성과 연출 면에서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한 개막식이다. 이것은 ‘예산 부족과 조직위와의 불협화음’ 때문이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핍과 안목 부재가 가져온 결과물일 뿐이다.

관료사회도 이 기회를 통해 변해야 한다. 사실 이번 기획이 예술가들만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당사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중국정부가 장예모 감독에게 보여준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문화예술 행사에서는 조잡한 이해관계와 성과주의가 원천적으로 차단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시아의 미래는 한류가 아니다. 너와 나를 편 가르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생명존중의 철학. 국가와 인종과 종교의 차별이 없는 가장 평화롭고 인류 보편적인 상생의 문화를 담아내야만 아시아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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