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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요즘 소설 ‘완장’이 생각나는 이유

 

오늘은 꽤나 오래전 읽은 소설이 생각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45만평이나 되는 ‘널금저수지’에 완장을 찬 관리인 임종술이 나타나면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낚시꾼, 심지어 저수지낚시터 사장까지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슬슬 피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임종술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져 심술과 행패까지 부리며 권력을 남용하기 일쑤다.

임종술은 동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기도 했으며 양키 물건을 팔기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 한량 생활을 하던 임종술이 저수지 관리인이 된 것은 때마침 동네저수지가 낚시터로 개발되면서 부터다. 원래 그는 주민들과 저수지개발 반대에 앞장섰었다. 일도 없이 저수지에서 야밤에 도둑고기나 잡는 생활을 하던 임종술이 눈에 가시처럼 행동하자 저수지 사용권을 따낸 최익삼은 그를 저수지 감시원으로 임명한다. 임종술은 이때부터 완장을 차고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안하무인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친다. 타지로 떠돌며 밑바닥 거친 일로 신물 나는 인생을 살아왔던 종술에게 완장이 금배지 이상으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종술의 그 권력은 야밤에 도둑 고기잡이를 하던 초등학교 동창 김준환 부자를 폭행하여 아들의 귀청을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등 마을의 독재자와 같은 모습으로까지 치닫는다.

완장을 두른 종술의 허황함은 저수지로 나들이 나와서 매운탕거리를 찾던 최익삼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고 마침내 그 사건으로 관리인 자리를 박탈당하지만 권력의 단맛을 본 임종술은 완장을 빼앗기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감독’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가뭄이 심해지자 가뭄 해소책으로 저수지의 물을 빼 전답에 쏟아 붓기로 결정한다.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려보지만, 종술은 결국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부월이와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날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완장이 떠다니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35년 전 발표한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다. 80년대 한국완장이라는 상징적 매체를 통해서 권력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심리적 반응과 효과를 요구해 왔는가를 반성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또한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완장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통해서 한국적 권력의 의미와 그 폐해를 고발했는데 당시 주인공 임종술역을 맡았던 탤런트 조형기는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국회의원이면 다냐’라는 요즘 각본없는 드라마를 보며 소설 완장이 떠오른다. 국민들이 감시의 기능과 입법의 사명을 위해 채워준 완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의무마저 소홀히 한 채 엉뚱한 곳에 힘을 낭비하고 있어서다.

또 하는 짓거리라고는 욕먹는 짓만 하고 나아가 욕먹을 궁리만 하는 그들의 행동 때문에 국회의원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누가 뽑아주었는데 이따위냐’고 말하기도 한다. 국회의원에게 굽실거리기는커녕 오히려 우습게 보는 국민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접을 받을 만큼 품격을 지키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작금의 행태에 비추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거후공(前倨後恭)’이란 말이 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전에는 거만했는데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으로,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일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권력자에 빌붙고 힘있는 자에 굽신거림을 비유한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국회의원들을 보면 이말을 ‘전공후거(前恭後倨)’로 바꾸어도 좋을 듯 싶다. 즉, 전에는 공손했는데 나중에 태도가 일변해 거만해 졌다고. 표를 얻기위해 알량하게 공손하더니 내가 누군줄 아느냐며 힘없는 국민에게 큰소리나 치고 150일 넘게 민생법안 챙기기에 소홀한 그들이어서다.

얼마 전 천안에 사는 3살짜리 외손주녀석이 집에 와 이런 ‘멘트’를 날려 놀란적이 있다. 어른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에 소외감을 느꼈는지 충청도 억양으로 ‘뭐∼여’라며 쳐다봐서였다. 진짜 국회의원들 요즘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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