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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오래된 가구를 바꿀땐 신중해야

 

엊그제 식사자리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결혼 15년만에 파경 위기를 맞은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 질문에 새카만(?) 후배가 이런 대답을 했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며 남녀란 ‘판단력이 부족해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 이혼하는데 때로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는 말이 있다. ‘아마 그들도 이 범주에 속하는 것 아니냐. 서로 갈길을 가기위해 준비운동을 한것 같다’며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여 놀랐다. 서른을 훌쩍 넘긴 싱글 후배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결혼관이 이런가 하면서...

적어도 지천명을 넘긴 세대들은 안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주례사의 고전인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를 지키려 안감힘을 쓰고 마음속으론 ‘에이 확-’하며 수십번도 넘게 이혼을 결심한 일은 있으나 그때마다 ‘타는 마음’ 부여잡고 결혼생활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또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참고 또 참으며 작은 행복에 즐거워했다. 거기에 더해져 자식이 성장하면 오히려 가정을 지키려는 의욕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가정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 사는 일이라 마음 먹은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사는 방식이 틀리고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정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사회가 지탱되어 갈 수 있는 원동력도 여기에서 나오는 지도 모른다.

시인 도종환은 ‘가구’라는 시에서 부부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했다.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평 없이 가정을 지키는 아내/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 하는 소리가 난다/나는 아내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나온다/그러면 아내는 다시/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힌다./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보다/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아내의 방에 놓여 있고/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가구는 없으면 찾고, 있으면 그저 거기 있나보다 할 뿐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시인의 표현대로 황혼에 이르러 서로 말이 없는 부부가 오래된 가구와 이처럼 비슷할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혹자들은 가구도 오래 쓰면 바꾸고 싶어하는것 처럼 사람들 또한 바꾸고 싶어하는게 심리라고 이야기 한다. 남자만이 그럴까.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중년이혼’이며 ‘황혼이혼’인지도 모른다.

사실 배우자가 더 이상 행복을 주는 상대가 못 된다면, 더구나 행복은커녕 괴로움을 주는 존재라면 이혼이 나을 수 있다. 행복해야할 집이 그리워지지 않고 들어가기 싫은데, 그것도 원인을 제공하는 상대자와 공통의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살라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고 고문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혼이 새로운 삶을 의도대로 보장해 주는 것은 이니라는 것도 간과해선 안된다. 시간이 흐르면 새 가구도 다시 시들해지듯 배우자와 이혼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도, 돌싱이 되어 혼자 살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어설픈 자아 찾기는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올수 있다는, 다시 말해 이혼의 신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이혼 후 힘들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독 충동적으로,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찌 보면 일생일대의 중대사인데 ‘식은 죽 먹듯’ 하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이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고, 당사자조차 이혼 사실을 숨기는 일이 그렇게 많을 리가 있겠는가.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한 후 자기 확신이 들 때 행동에 옮겨야 맞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신중히 고민하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내린 결정이라면 흔들림이 적고 회한의 크기도 반으로 줄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가구를 바꿀 땐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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