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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존댓말의 정확한 사용, 권위주의의 청산

 

한 주일 전이 한글날이었다. 어쩐 일인지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잘 쉬긴 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과연 먼 미래에도 한글은 우리의 아름다운 모국어로 남을 것인가?

나라가 폭삭 주저앉지 않는 한, 모국어로 쓰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국어가 아름다운 자산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많이 지적된 점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존댓말의 잘못된 쓰임이다. 사람을 올리는 것이 바른 사용법인데, 그게 지나쳐 사물에 대한 존대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예를 들면, “주문하신 음식이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음식이 나오셨습니다”라거나, 또 “음식 값이 얼마입니다”라는 표현 대신 “값이 얼마이십니다”라고 쓰는 식이다. 물론 삶의 양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예전의 존칭을 잃어버리고 새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의 진통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존댓말에는 이러한 불편함을 넘어 ‘위험한 진실’이 들어 있다.

한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자 문화의 권위주의적 잔재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일 자체가 그 뜻을 담고 있다. 한자를 배우기 어려운 일반 백성도 말에 어울리는 문자를 갖게 하자는 것 자체가 한자 문화의 권위를 허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해 추진한 근대적 개혁 가운데 하나가 공론장에서의 한글 사용이다. 이후 『독립신문』을 비롯해 새로 생겨난 매체들이 한자 대신 한글을 쓴 일이며, 개화기는 물론이고 일제 침략기에도 애국계몽 운동의 주요한 내용이 우리 ‘한글 배우기’라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글이야말로 평등한 시민사회의 문화적 상징인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한글이 잘못된 존댓말로 오염된다는 것은 애초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는 가슴 아픈 일이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권위주의라는 위험한 유산이 숨어 있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0년 많은 고통을 겪으며 근대적 시민사회를 성숙시켜 왔다. 선거라는 정치제도나,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자유만 놓고 보자면, 최고 수준의 탈권위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해체되지 않는 권위주의가 암처럼 자라고 있다. 족보를 앞세워 양반 혈통을 따지는 것과 같은 신분 콤플렉스, 다 못 먹을 것을 알면서도 떡 벌어지게 한 상을 차려야 직성이 풀리는 졸부 콤플렉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천민 콤플렉스 등등이 그것이다. 오랫 동안 권위주의에 치이고 살아왔기에 오히려 알량한 상황에서나마 대접을 받고자 하는 우쭐한 보상 심리,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심층 심리를 지배하고 있는 암적 권위주의이다.

그러니 캐셔나 상담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막말을 퍼부으며, 아파트 경비원 같은 약자에게 패악에 가까운 ‘갑질’을 행사하는 사회적 병리가 곳곳에서 곰팡이처럼 싹트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곳에서 기를 펼 수 없기에,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권위를 행사하고 싶은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그릇된 권위주의야말로 과도한 존댓말을 낳은 사회적 토양이다.

하지만 올바른 권위란 우월한 힘의 행사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의 자발적 존중에서 나온다. 약자를 배려하며 보호하는 것! 군림하려 들지 않고 소통하고자 애쓰는 것! 무엇보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것! 이러한 태도야말로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얻을 수 있는 ‘따듯한 권위가 아닐까? 따라서 과도한 존댓말을 들으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신 스스로도 억지스럽게 상대를 높이려 하지 않는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존댓말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림하는 봉건적 권위주의가 아니라, 평등한 시민사회의 성숙하면서 따듯한 권위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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