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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시대를 너무 앞서 살았던 나혜석

 

나혜석은 20세기 전반 일제 식민지하에서 남성의 욕망만이 허용되는 시대에 여성의 욕망을 예술과 몸으로 실천한 여성이다.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의 삶은 모든 것이 일등이었다. 진명여고 수석 졸업, 최초의 동경여자미술학교 유학생, 최초의 여류화가 등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으로 인생을 시작하였다.

나혜석은 불꽃같은 사랑을 한 여성이다. 동경 유학시절 시인이었던 최승구와 불같은 사랑을 하였고, 첫사랑 최승구가 폐병으로 죽은 후에는 그를 잊지 못하였다. 나혜석은 6년간 쫓아다녔던 친구 오빠 김우영과 결혼하였다. 김우영에게 결혼 조건으로 첫사랑 최승구 시인의 묘비를 세워달라고 하였다. 김우영은 나혜석의 조건을 받아들여 신혼여행 중 최승구 시인의 묘에 들러 묘비를 세워 주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유럽 여행을 가서 최린을 만나 유부녀로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남편의 요구로 이혼을 하였다. 한편 연인 최린의 배신에 나혜석은 정면으로 맞섰다.

그의 배신을 사회에 고발하고 정조를 유린한 댓가를 보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비수가 되어 나혜석에게 돌아왔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되었다. 나혜석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 남성의 욕망만이 인정되는 시대에 여성의 욕망을 몸으로 실천하고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해 발언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살던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아 1949년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불운한 여성이다.

남성의 욕망만이 인정되는 시대에 여성의 욕망을 예술과 몸으로 실천한 여성

하지만 삶이 불운했다고 해서 그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나혜석은 한 여성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살아간 여성이다. 여성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에 글과 그림 그리고 몸으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실천하면서 여성의 역사, 예술가의 역사를 새로 만들어간 선각적인 삶을 살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혜석은 여류 서양화가, 여성 소설가, 독립운동가로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갔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사후에도 그의 글은 전집으로 묶여 간행되었으며, 연구자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이었기에 그녀의 삶은 빛보다는 그림자가 더 깊게 드리워졌다. 여자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만을 요구받았던 시대에 나혜석 스스로 말했듯이 “18세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사건, M과의 연애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 사건, 구미 만유(漫遊) 사건, 이혼 사건, 이혼고백장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나혜석은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머물기보다는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며 살았다.

“나에게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고 밝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나혜석의 삶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물론 당 시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파격은 새로운 여성의 역사를 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행동이었기에 후대가 나혜석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1934년 ‘삼천리’에 실린 나혜석의 ‘이혼고백서’에서 나혜석은 말했다. “여자도 사람이며 여자도 인권이 있다.” 그러나 나혜석은 당 시대에 사회에서 매장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혜석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당시에는 부인을 여러명 두고 사는 남자들도 많았다. 남성의 욕망은 무한적으로 허용되는 시대였다. 나혜석이 만일 남자였다면 그의 언행이 그렇게 지탄받았을까? 아마도 남자였으면 그 같은 비난까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나혜석은 세상을 너무 앞질러 살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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