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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잃어버린 일몰

 

모처럼의 나들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흔적을 차려 입고 있었다.

가을 산은 초록을 영영 잊으려는지 다투어 물들고 들길에서는 억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임원진의 목소리는 점점 묻힌다.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을 거르는 친구들을 위해 누군가가 준비한 떡과 음료수를 돌리고 몇 가지 주전부리가 올망졸망 담긴 비닐봉지가 하나씩 안겨졌다.

조금 더 가다 식당을 하는 친구가 어묵을 한 통이나 끓이고 여러 가지 반찬이 담긴 사각형 스텐 용기를 올리자 탄성이 쏟아진다. 신기하게도 먹는 동안에도 두런거리는 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어렸을 적부터 똑똑하던 아이가 명문대를 나와 재벌 회사에 취업을 하더니 참하고 예쁜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는 말끝에 내 일처럼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안 볼 때 비쭉거리는 쪽도 있다.

남편이 퇴직을 해 삼식이가 되는 바람에 귀찮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더니 눈치 빠른 남편이 나서서 하기에 얼마나 가나 두고보자 하고 놓아 둔 것이 어찌나 살림 참견이 심한지 시어머니가 두 분이라는 푸념도 들린다.

친정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애통한 나머지 오빠내외를 향한 서운함에 끝내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도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수십 년 세월을 하나로 동여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을 여행의 일정에는 등산이 포함 되어 있었는데 별로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산이라 대부분 등산로로 들어섰다. 자주 산을 찾는 친구들이 앞장을 섰다.

자타공인 사진작가도 만삭처럼 나온 배를 끌고 올라갔다.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골짜기에 물은 별로 없고 앙상하게 마른 풀이 무성했다.

며칠을 두고 등이 결려 병원을 다니던 나는 그늘만 보면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조금만조금만 하며 걷다 넓적한 바위에 다른 친구 둘을 만나 걸터앉았다. 조금 쉬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가던 길을 돌아왔다.

예정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자유시간도 지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고개를 돌린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 기회를 엿보며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굽이마다 차는 심하게 흔들렸고 평평한 길에서는 건물이나 나무 또는 산이 시야를 가렸다. 일몰은 언제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지만 흔들리는 차에 앉은 서툰 솜씨를 용납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가 안간힘을 써도 끝내 놓치고 만 것이 과연 일몰뿐이었을까? 어려운 고비마다 동행해 주는 친구들, 좋은 것만 보면 누나 생각부터 하는 동생들, 힘들어서 얼굴 상한다고 안쓰러워하는 분들, 내가 조금만 더 이해를 했으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아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조금만 더 기다리다 보면 어느 훗날엔가 잃어버린 일몰을 닮아 있지는 않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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