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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싶은 삶… 연기 하나에 만족 하지 않아”

장편영화 ‘다우더’ 감독·주연 구혜선
‘칠곡계모사건’ 듣고 울분 쌓여 시나리오 작업
유능한 배우 엄마 역 심혜진 덕분에 촬영 수월
적은 예산에 ‘영화 색깔’ 어둡고 묵직하게 반영

 

구혜선(30)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는 연예인도 드물 듯하다.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배우뿐 아니라 감독, 화가, 작가, 작곡가, 가수로도

활동한다. 나이가 들수록 관심의 폭이 늘면서 활동의 폭도 키웠다.

‘얼굴도 예쁜데 재주도 좋네’라는 칭찬도 받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

는 비아냥도 들었다. 칭찬은 한 번의 웃음으로 끝나지만, 욕설은 마음속을

긁어 깊은 생채기를 냈다. 그래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썼다. 단편 ‘유쾌한 도우미’(2008)에서 시작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당신’(2010), ‘기억의 조각들’(2012) 같은 단편영화와 ‘요술’(2010),

‘복숭아나무’(2012) 같은 장편영화로 이어졌다.




구혜선이 세 번째 장편영화 ‘다우더’를 들고 다시 감독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주인공도 맡았다. 자신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 건 처음이다. 말랑말랑한 이야기 대신 모녀 관계와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택했다.

‘칠곡계모사건’ 같은 강력 사건을 듣고 울분이 치밀어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와 초·중·고를 거치면서 들었던 가정 폭력 이야기를 섞었다.

“근래 들어 그런 강력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요. 아이들이 폭력을 경험하는 주된 경로가 놀랍게도 가정이에요. ‘부모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엄마(심혜진)에게 매를 맞고 자란 산(현승민·구혜선)과 그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뤘다. 엄마는 남들 앞에서 교양 있고 침착하지만, 아이와 둘만 있으면 학대를 서슴지 않는 ‘위선적인 엄마’로 돌변한다.

“엄마가 오해하실까 봐 안 보여 드렸어요. 또래들을 보면 공포심에 학창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았죠. 가정 폭력이 정말 심각했어요. 말 안 들으면 맞는 게 정당하다고 여겼어요. 계모보다 친부모가 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혜진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심혜진은 발작에 걸린 듯 화를 내다가도 차분하고 조용한, 위선적인 엄마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돈도 못 드렸는데 부탁을 하자 바로 답이 왔어요. ‘심혜진 선배가 아니면 이 영화 접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흔쾌히 오케이를 받았죠.”

구혜선은 감독이지만 동시에 연기자이기도 하다. 선배에게 연기 지시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시나리오를 크게 벗어나는 디렉션을 하지 않았어요. 표현을 잘하셨어요. 제가 말하기 어려울까 봐 일부러 찾아와 ‘문제 있으면 말해’, ‘조금 더 해볼까’ 하고 말씀해 주셨어요. 워낙 월등한 능력을 지닌 배우였기에 영화를 끌고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꼭 필요한 경우라면 ‘한 번 더 갈까요’라고 말하기도 했죠.”(웃음)

영화는 프린트와 마케팅비용을 포함해 1억 2천만 원이 들었다. 적은 예산 탓에 8회차 만에 뚝딱 찍었고, 배우도 많지 않았다. 미술, 조명에 유난히 신경 썼던 전작들에 비하면 톤도 많이 다운됐다. 소재에서 오는 묵직함뿐 아니라 적은 예산이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을 정했다.

“후반작업 비용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하루 밥값만 해도 만만치 않았어요. 예산에 꼭 맞춰야 했고, 군더더기도 없어야 했어요. 그렇게 절약하면서 찍었지만, 스태프들도 거의 돈을 받지 못하고 촬영했죠.

연기에 집중하는 건 어떠냐고 묻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만 하려면 전화만 되는 휴대전화만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 스마트폰을 써요. 대학가서 전공 선택할 걸 왜 고교생들에게 12과목이나 가르치나요? 카페를 한다고 해도 실내장식, 전등, 음악 등을 골고루 알아야 해요. 영화도 마찬가지죠. 조명, 미술, 기술 등 많이 알아야 하죠. 제가 여러 가지를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뿌리는 하나예요. 예술이죠. 시간이 오래 걸려야 완성될 수 있는 거예요. 한 가지만 하라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첫 작품 ‘유쾌한 도우미’부터 ‘다우더’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이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고 여겼다. 그는 “죽음을 알아야 사는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죽으면 이 방은 누가 정리하지?”, “설거지는 누가 하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부터 그는 버리는 걸 시작했다.

이제는 그 작업에 익숙해 신발도 세 켤레밖에 없다. 잦은 이사 탓에 옷도 대부분 버렸다. 3평 남짓한 방에는 침대도 없다. 냉기가 올라와서 방에 텐트를 치고 자야 한다. 차도 팔았다. 서울에 올라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온다. 누가 알아보지 않느냐고?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한 절대 알아보지 못해요. 스마트폰을 보면서 고개 숙이고 가도 모르고요. 사람들은 의외로 남들에게 관심이 없어요.”

“제일 큰 사치가 검소를 욕망하는 사치”라는 그는 “창작을 하는 이유는 소통 때문인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정받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원래는 자유롭고 싶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표현하면 할수록 굴레가 돼 돌아오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분명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진 않을 거라는 거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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