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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비정규직, 미생(未生)

 

최근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의 열기가 뜨겁다.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며 선전 중이다. 영화는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한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 노동유연성을 높이라는 IMF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비정규직은 급증하게 되었다. 기업은 당연히 고용과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구직난에 내몰린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이라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고용의 남용과 차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결국,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금지와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6년 11월30일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7년 7월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해결하겠다는 좋은 취지와는 달리 역효과와 ‘변종’ 비정규직만 양산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직전에 해고를 한다거나 용역파견직이라는 변종 고용 방식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아웃소싱이라고 하는 이 용역파견직은 공기업, 국영기업, 국가기관에 이르기까지 마구 번져나가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취업률, 고용율을 높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방식은 앞으로도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안방극장에서는 드라마 미생(未生)의 열풍이 대단하다. 100만부가 팔렸다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기존의 공중파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샐러리맨들의 일과 직장 생활 전반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생 효과’로 직장인들에 대한 인식이나 집에서 받는 대접까지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대우빌딩(서울스퀘어)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름을 붙인 장그래빌딩으로 불리면서 공실율도 낮아지고 건물 내 상가는 주말에도 문을 여는 등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미생은 바둑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아직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돌의 상태’를 말한다. 인턴으로 시작해서 계약직 사원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완생(完生)을 향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한 개의 바둑알이 되어 사투를 벌이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시청자들은 가슴으로 공감을 하고 있다.

며칠 전,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의 한 복합문화공간의 하반기 운영 평가를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 전시 및 공연 시설을 연중 상시로 운영하는 공간에 직원은 열두 명이다.

이들 중 정규직은 4명, 비정규직은 8명인데 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책임지는 예술감독, 기획자, 큐레이터,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은 모두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은 행정과 관리, 운영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오늘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현주소다.

이 복합문화공간의 운영주체인 상급 기관에서는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이런 인력 구조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다. 예산 역시 개관 당시와 비교하여 점점 삭감되는 실정이다.

필자는 현 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비전으로 ‘문화융성’이나 ‘문화가 있는 삶,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멋진 글귀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문화예술기관의 비정규직문제 개선이나 예산 증액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고 사례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돈이 없어도 인력이 부족해도 머리 좋은 몇 사람만 있으면 나라의 문화예술이 잘 돌아가고 그들의 아이디어로 문화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일까.

문화예술계에서 미생인 채로 대한민국의 문화융성을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고용과 처우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과 개선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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