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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12월 단상(斷想)

 

2014년 1월1일자 신년사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그러고 보니 갑오년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정치·경제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앞다퉈 신년인사를 빌미로 네 음절의 한자로 만든 올해의 사자성어를 쏟아낼 것이다. 그리고 언론마다 사자성어가 홍수처럼 넘쳐날 게 뻔하다. 성급한 사람은 이미 내놓기도 했지만.

지난해 말 대학교수협의회는 전미개오 (轉迷開悟)를 갑오년 사자성어로 선정했었다.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올 한 해 나라꼴은 정반대로 갔다. 다시금 떠올리기도 싫은 세월호 참사 등 인명을 앗아간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손을 놓은 채 서민들을 철저히 외면,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기에 급급했다. 따라서 사자성어처럼 국민 모두를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더한 혼란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꼴이 되어 버렸다.

세월이 기원했던 바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여전히 연말은 다가왔다. 그리고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나 달력에는 어김없이 메모가 여기저기 적혀 있다. ‘저녁 6시’ 혹은 ‘점심 12시’ 부부동반 등등 음식점 이름과 함께 참가 모임의 명칭이 빈칸을 채우고 있다. 나 또한 나이들면서 줄였고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했지만 그래도 꼭 참석해야할 모임이 서넛은 된다. 그러면서 만만치 않은 회비를 가늠하니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번민에 빠지는게 요즘이다. 이런 번민이 드는 걸 보니 이른바 학연, 지연,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끼리 그 특별한 관계를 다지는 모임의 성수기가 도래했다는 것이 더욱 실감난다.

사실 사람들은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모, 남편, 아내, 친구, 이웃 등등 헤일 수 없이 많은 관계를 유지하고 혹은 자의든 타의든 정리한다. 사회생활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면 사람은 왜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날까. 외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은 예외 없이 ‘혼자’ 세상에 태어나서 ‘혼자’ 떠나기에 사는 동안에는 혼자서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으며, 누군가에게서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한다, 따라서 살갑게 온기를 나누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인간이 굳이 친구와 애인을 찾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는 원인을 들지 않더라도 살아오면서 충분히 터득한 지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인다고 관계가 저절로 늘어나고 깊어지지는 않는다. 연말에 동창회나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많은 사람과 만나며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어 보지만, 신년이 되어 막상 필요한 순간에 연락할 만한 사람을 찾으면 변변한 이름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진정성이 결여된 관계 형성의 결과다. 나이들면 더하다. 젊어서 다져논 관계의 디딤돌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닳아 버린 까닭이다.

관계 유지를 위해 모임에 가면 지인들 자랑에 입이 바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정치인 누구와 친하다, 정부 실세와 가까운 사이다, 대놓고 자랑하기보다는 은근히 과시하는 유형도 있다. 그러나 누구와 가깝다는 걸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은 내세울 것이 변변치 않은 범인들이다. 그런데도 잘 떠벌인다.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자랑이 커질수록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초라함만 비례할 뿐인데도 말이다.

엊그제 좀 일찍 잡힌 올해 첫 송년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나마 관계를 유지하려면 건강이 있어야 한다’ 라는 선배 얘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70이 넘은 선배는 이런 농담반 진담반도 건넸다. ‘살아보니 돈 많다고 요양원에 간다는 게 자랑으로 보이지 않더라. 경로당에 가서 석·박사 학위를 자랑해야 본전이나 건지겠는가. 늙고 병들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비슷해 보이고,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모두 거기가 거긴데…’ 잘난 체 하지 말고 있는 관계나 잘 유지하라는 뜻으로 이해돼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연말을 맞아 모임이 잦은 지금, 내가 모임에 나가는 이유가 사람들과 우의를 다지고,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인지를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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