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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차라리 없으면 좋겠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설 명절 얘기다. 다음 주면 또 지난해와 별 다르지 않게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의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다 적당한 핑계대고 각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이어지겠고. 일 년에 한두 번 치르는 연례행사쯤으로 치부해 온 명절. 그런데도 마음은 무겁다. 기다려지고 설레야 하는 기대 또한 사그라진 지 오래지만 부담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해마다 수없이 들어온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매년 새삼스럽게 들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설에만 모이는 시댁식구들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주부들, 나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다. 피해 가지 못하는 ‘숙명의 한판(?)’을 위해 이 시기만 되면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역시 쉽지가 않다.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 상상도 해본다. 아울러 스트레스 최대한 받지 않겠다 다짐도 해 본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어느 틈엔가 머리 한 구석에 명절 당일 식구들 먹을 음식 메뉴가 자리 잡으며 스트레스를 부추긴다.

시댁인 남편의 고향에라도 내려가야 하는 처지는 더하다. 교통대란을 뚫고 고향에 도착하면 이어지는 술자리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교통대란, 고향을 찾은 가족은 예전처럼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설’ 영화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명절에 의무감으로 모이긴 하지만 각자의 방에 숨어 지내다 제사 때 얼굴을 잠시 보이고 밥 먹고 재빨리 헤어진다. 의무감에서 하는 일인 만큼 결코 길지 않은 이 시간에 1년 치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가 매년 설, 추석이 지난 후 이혼율이 급증하고 심지어는 명절 때 친족 살인이나 자살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특이한 나라라는 오명도 다 이 같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스트레스는 그래도 참을 만하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빠듯이 준비해야하는 명절일 때는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가 더 실감난다.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도 아마 이 시기일 것이다. 맞벌이 부부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그나마 외벌이이고 회사 사정이 안 좋아 보너스는 고사하고 월급마저 쥐꼬리만큼 손에 쥘 것을 생각하면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이 웬수같이 느껴지면서.

그렇다고 자영업자들은 나은 편인가? 또 중소기업을 하는 사장님들은 넉넉한가? 임시직 알바생 등등 우리사회에서 소외받는 저소득 계층은 따지기도 민망하다. 거기에 대학을 졸업한 청년 백수는 차라리 숨고 싶은 심정일 것이고, 실업의 고통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년의 퇴직자들은 식구들 눈치 보기조차 민망하다. 전후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명절날 모이기만 하면 이런 말을 하는 친인척이 꼭 있다. ‘요즘 뭐하고 지내’ ‘취업은 언제 할래?’ ‘결혼은 안 할 거니?’ ‘어느 대학에 들어갔니?’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툭툭 던지는 한마디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명절이 지나고 우울증에 불면증까지 복합적으로 찾아와 긴 시간 괴롭히기 일쑤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명절이 더욱 실감(?)나는 곳도 많다. 고향에도 못가고 찾아오는 이 조차 없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가정, 시설 등이 그곳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또 얼마나 깊은 설움 속에 이번 설 명절을 견뎌야 할까? 공동모금회가 사랑의 온도탑을 105도로 끌어 올렸다고 하지만 이들의 가슴은 여전히 영하의 날씨다. 그나마 관공서를 비롯한 각 기관에서 설맞이 소외계층 돕기 행사가 요즘 부쩍 늘어 다행이다. 이맘때면 으레 나타나는 단체장과 정치인들의 꼴 보기 싫은 설침만 없다면 말이다. 물질의 풍요만으로 행복을 측정할 수 없다. 내 가정을 비롯 소외 받는 우리의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마음만이라도 따뜻해야 하는데 그나마 그렇지도 못해 가슴 아프다. 즐겁고 기다려지는 명절은 영원한 숙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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