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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소원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질까?

 

농촌인 외갓집에서의 정월 대보름 추억은 그야말로 ‘불의 향연’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였지만 기억도 생생하다. 겨울철 신나는 놀이가 없었던 시절이라 더 그랬다. 얼음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들판 또는 논 한가운데 동네 마을 어른들이 달뜨기 무섭게 불을 놓고, 타오르는 장작더미 옆에서 깡통에 불씨를 넣고 힘차게 돌리던 기억, 도시에서 맛보지 못한 환상 그 자체였다.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불덩이, 먼데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불이 혼자 둥글둥글 원을 그리며 잘도 굴러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깡통을 공중에 던지면 떨어지는 불씨가 산산이 흩어지며 자연 불꽃놀이가 되어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늘에선 보름달이 밝게 비추면서 웃고 있었고. 그렇게 불 곁에서 뛰고 놀다 외갓집에 돌아오면 으레 꿈속에서 불장난을 한다. 그리곤 불은 항상 크게 번지고 번진 불을 끄기 위해 소변을 보는데 뜨끈한 온기가 아랫도리를 타고 흐르는 걸 느꼈을 땐 이미 이불이 젖어버린 후였던 기억들도 새롭다. 사고를 친 날 저녁에는 달을 보고 이렇게 읊조리며 기원했던 것 같다. ‘내년에도 오게 해주시고, 오줌 싸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내일(5일)이 대보름이다. 올해도 쥐불놀이를 지켜보던 보름달은 휘영청 뜰 것이다. 기상청의 예보도 특별한 기상변화가 없는 한 보름달 보기가 좋을 것이라 한다. 비록 음력이지만 예부터 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 년의 운세를 점쳐 보는 달이었다.

정월의 중간인 ‘대보름’의 달빛은 그래서 신성시 했다. 어둠,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교의 차이를 떠나서 아주 먼 옛날부터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소원을 빈 것은 어둠 속에 떠오르는 달은 밝음의 상징이면서 또 한편으론 신비함과 경건함과 넉넉함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보름달을 보고 빌어 온 많은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사람들의 소원 빌기는 매년 되풀이 된다. 세상이 변하면서 줄어들기는 했으나 역시 진행형이다. 그리고 비는 소원은 대부분 소박한 것들이다. 시집 장가가게 해 달라고,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고,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등록금 마련해 달라고, 취직 좀 시켜 달라고, 전세금 좀 오르지 않게 해달라고, 게딱지같지만 내 집 좀 갖게 해달라고, 갑질에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일한 만큼 제대로 대우 좀 받게 해달라고, 그저 가정행복 지키게 해 달라고….

모두가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바람이나 저주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일상의 행복을 구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 속을 좀 더 들여다보면 모두가 절박함이 묻어나는 것들이다. 오죽 답답하고 비빌 언덕이 없으면 보름달에 의지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나마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위안을 삼는다. 소박한 소원이지만 사실 절박한 우리의 소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혹여 소원을 빌지 않더라고 보름달을 보면 지나온 시절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생각에도 잠기게 된다. 경제가 어려워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고 앞날은 불안해 계획조차 세울 수 없고, 그런데도 정치판을 비롯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건 아닌데’ 하는 속상함이 있는 요즘은 더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해본다. 내일 밤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보고 해고 통보를 받은 명퇴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월보름 대목을 시원찮게 보내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농사철을 앞둔 농부들과 구제역, 조류독감에 멍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축산농가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은? 모두 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르다 할지라도 어쩐지 보름달만큼 환하고 넉넉하진 않을 것 같다.

올해 유난히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집 사고, 엽총 살인사건에 각종 비리까지 겹쳐 국민들의 마음이 무겁다. 앞으로도 10개월이나 남은 것을 감안하면 걱정이 더욱 앞선다. 대보름달을 보고 앞으로 들 액운을 모두 날려 보내달라고 기원하면 그 소원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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