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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언제까지 아이들을 볼모로 삼을 것인가

 

얼마 전 천안에 살고 있는 딸이 왔다. 만 4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모처럼 주말나들이를 한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 폭행사건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대화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렀다. ‘아파트 내 놀이방에 보낸다고 했는데 적응은 잘하니? 또래들과 잘 어울리고? 아침에 잘 떨어지려 해? 놀이방 선생님은 어때?’ 등등. 아내와 내가 번갈아 가며 던지는 속사포 질문에 딸은 빙그레 웃으며 ‘잘하고 있어요’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정작 내년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쉰다. 내년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요즘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육대란’이란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막막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현재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고 맞벌이가 아닌 입장이라 한숨이 나올 만도 하겠다 생각하니 심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이들을 볼모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사탕발림으로 표 얻고 나서 나 몰라라 돈타령만 하는 정부의 무책임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답답함에 대화마저 끊겨 버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를 둘러싼 ‘보육대란’ 얘기가 부쩍 자주 나온다. 따라서 올해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난리도 아니다. 감당해야 할 비싼 보육료도 문제지만 나라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어온 신뢰가 깨지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새 학기만 되면 이럴까. 지난해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보육료를 둘러싼 ‘보육대란’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엔 보육료 부담 주체를 놓고 중앙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 정치권이 대립한 끝에 2015년 3개월 치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우선 편성키로 하고 봉합했다. 세부적으론 누리예산 부족액 1조7000억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은 지방교육채 발행으로, 나머지는 정부가 예비비를 편성해 각각 충당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재정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정부는 이를 빌미로 5000여억원의 예비비 집행을 보류함에 따라 올해 다시 문제가 불거질 공산이 높아진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이런 합의도 없다. 딸이 걱정한 대로 내년엔 어찌 감당 할 것인가 막막함 그 자체다.

하지만 세부사항은 아는 사람만 아는 내용이다. 대부분 국민들은 보육료 지원을 놓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여·야 정치인이 왜 싸움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예비비를 풀어라’ ‘지방채를 발행해라’ ‘중앙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 등등의 해법안도 그들만의 말잔치로 치부한다. 다만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 돈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민 부담이 늘어나고 결국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원론적인 인식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분노하고 괘씸해하는 것은, 계획은 자기들이 세워놓고 실행하기가 벅차 ‘돈’ 탓만 하는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젊은 부부들은 그야말로 수입이 뻔한 새내기 부부들이나 다름없다. 그 뻔한 수입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고 입히고 먹여야 한다. 한 푼이 절박하고 아쉬운 처지들이다. 그런 와중에 정부에서 이이들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한다고 나섰으니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겠는가. 그것도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한 말이니. 그런데 2년도 지나지 않아 ‘아이만 낳아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던 그 약속을 스스로가 앞장서 깨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하기야 정부나 정치권이 아이들을 볼모로 갈등을 야기한 게 어디 한두 가진가. 육아지원정책은 물론이고 무상급식 및 저소득가정 자녀지원에서부터 어린이집 CCTV 설치 법안에 이르기까지. 이런 갈등의 희생양이 된 가정은 문제를 야기한 정치권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집안에도 있을 것이다. 대책 없이 내놓은 정책이 비수라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가고 있는 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처럼 아이들과 학부모를 볼모로 한 정책이 줄어들지 않는 한 나라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젊은 부부들에게 현실을 무시한 채 걱정 말고 아이를 낳으라고 권할 수 없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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