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선묘
/박태일
선묘 앉은 귀밑볼 아침이슬 반짝입니다
선묘 앉은 돌부리 패랭이꽃 절로 핍니다
선묘 마음 속 간날 한 그리움 섰다 무너지면
선묘 저는 부석 물가 으뜸 빛좋은 곱돌입니다
손을 주셔요 산허리 빗발 들고
젊어 헤픈 님 사랑 무에 쓰나요 손을 주셔요
멈칫멈칫 님 떠나고 고개 돌려 님 떠나고
가릴 수 없는 그 한 자리 그리움
풍기 순흥 흔한 삼밭 삼꽃처럼 붉게 젖을 때
선묘 이제 발바닥으로 님 사랑 느끼며
선묘 이제 목젖으로 님 사랑 참으며
선묘 흘러 남도 바다에 서겠습니다
님 마을 언저리 배고픈 풀꾹새 되어
풀꾹풀꾹 한낮 온 밤에 저 그리움 남겨두고
가다가다 밤바다 첫물길을 놓치겠습니다.
신라에서 공부하러 건너온 젊은 의상스님을 연모해, 어머니 나라를 버리고 멀리 신라 땅까지 의상을 따라 건너왔다던, 당나라 처녀 선묘 옛이야기를 시로 풀어낸 듯 하다. 경북 북쪽 영주 부석사다. 가슴시린 일은 사랑하는 님 흔한 기억 속에서도 깃들지 못한 채 질경이 꽃처럼 철따라 피었다 지고 있을 이 땅 한 많은 여자들 속 앓는 사랑놀이다. 사랑은 사람이 이루는 일이나 사람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이기도 하니 그럴 듯한 꿈꾸는 선묘의 자태가 일어난다.
/박병두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