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긴 아깝고
/박 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 박철시집 〈작은 산/실천문학 2013〉
이 나라 시인의 꼬리꼬리한 냄새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다. 자존심과 긍지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시다. 전업시인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시단에 등록된 시인이 이만 여 명이라 한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시인들은 꾸역꾸역 새로 나타난다. 시인이 많다는 건 여러 가지 문제를 낳기도 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이 시에는 있다. 시인도 식당 여주인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를 이상한 눈빛으로 이끄는 맛깔스러운 레시피가 있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