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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가면을 벗어야 신뢰를 얻는다

 

북경특파원 시절 기억이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중국 지인들과 장거리 나들이에 나선 적이 있다. 매운 음식의 본고장이라는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로 음식 여행을 떠난 것이다. 1박2일 일정으로 간 그곳 한 음식점에서 관람했던 ‘변검’ 공연은 참 신기했다. TV를 통해서만 보던 것을 눈앞에서 보니 더욱 그랬다. 어쩜 그렇게 빨리 가면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혹시나 알 수 있을까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허사였다.

변검이란 잘 알다시피 무대 주인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의 가면을 수시로 바꾸는 마술이며 쓰촨성에서 생겨난 가면극이다. 가면을 통해 주인공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변검술은 방법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로 유명하다. 옆자리에 있던 지인이 국가기밀로 취급할 정도라는 귀띔에 웃음이 나왔지만 아무튼 신기했다.

지금 생각으론 약 15차례나 얼굴의 가면이 바뀐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공연자는 마지막 가면을 다 바꾼 후에야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냈다. 앳돼 보이는 남자였으며 참 인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나 역시 함께 박수를 치며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봤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변검 같지는 않을까?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폴트루니에는 자신의 저서 ‘인간의 가면과 진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있다. 대놓고 가면을 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를 뿐이다. 가면의 존재를 알고 가면을 벗기면 비록 참된 인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참된 인간을 향해 갈 수 있다. 단지 하나의 가면만을 벗어 버리더라도 가능하다’라고. 인간은 늘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쌩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좋은 점만 보여주고 나쁜 점은 은폐시키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가짜 장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현대인들이라면 한두 번쯤, 아니 매일매일 겪는 일이기도 하다. 이 같은 가면 쓰는 일은 본심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너나없이 언제든지 실행에 옮기기 일쑤다. 때문에 인간은 보이는 얼굴은 하나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 즉 감춰진 얼굴은 셀 수 없이 많다고 우리 스스로가 자인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참된 인간과 겉보기의 불일치는 반드시 불쾌감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가면을 멀리 벗어던지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무방비한 상태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공통된 심리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니체의 말을 미루어 볼 때 정부 기관 단체도 다를 바 없다. 모두가 사람이 운영하는 까닭이다. 이번 메르스 공포를 야기한 정부를 보며 가면이 생각나는 것도 이 같은 연유다. 처음부터 ‘쌩얼’로 국민들 앞에 서지 못한 과오, 가면을 쓰고 국민 앞에 나타나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때마다 쓴 가면을 갈아 치우는 능숙함(?)을 보인 우매함, 부처 간 여야 간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상대방의 약점만을 탓하는 이기주의가 지금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서 그렇다.

개인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 타인과 관계를 정립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의 신뢰는 깨지게 마련이다. 특히 나라는 더하다. 국민을 상대로 가면을 쓰고 국민의 이익을 대변치 못한다면 국가 운영의 주체마저 존립의 근거를 상실하게 마련이다.

공자는 국가공동체의 존립근거로 국방력과 경제력과 도덕적 신뢰를 들면서 그중 도덕적 신뢰를 으뜸으로 여겼다. 그리고 신뢰나 신용, 신의와 신앙이 없으면 사람 사이에 관계와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설파했다. 작금의 국가적 재난 상태나 마찬가지인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더 이상의 확산 방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정부의 신뢰회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가면을 바꾸어 쓰는 정부가 아니라 매번 ‘쌩얼’로 나서는 정부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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