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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각자도생’은 공멸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날 방법을 도모한다’는 이 말이 요즘 화두다. 아니 메르스 발생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유행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메르스 초동 대응에서 국가의 역할이 빠져버렸고, 주먹구구식 보건복지부의 대처와 사안을 은폐·축소시키려는 정부의 비밀주의가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은 무능함이 공포와 불안을 불러왔고 정부를 불신한 국민들의 사이에 이 같은 말이 유행한 것이다.

나라를 믿지 못하고 국민들 스스로 살길을 도모한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비록 유행어지만 끔찍함마저 든다. 나라의 존립 근거마저 흔드는 말이라 더욱 그렇다. 어디 국민들뿐만 인가. 패닉상태에 빠진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관련자들 또한 각자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사실을 은폐·축소했다. 심지어 메르스 확산 주범격인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국회 청문회에 나와 ‘자신들은 책임이 없고 나라가 뚫린 것’이라는 오만한 발언을 쏟아낼 정도였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정부의 무능함을 빗댄, 오래된 자유당 시절 이야기도 회자됐다.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작 본인은 이미 대전으로 내려가 놓고 국민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고 거짓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도발 시 ‘한방에 북한군을 괴멸시키겠다’고 장담한 신성모 국방장관은 북한군이 도발하자 총 한 번 제대로 쏴 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내빼다가, 결국 모든 군인은 각기 양식대로 행동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 전쟁이 나자 총을 들고 싸워야할 군인들에게 ‘각자도생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니 지금과 다를 게 무어냐는 이론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그 추종세력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현 정권의 무능을 꼬집는 과한 면은 없지 않으나 국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왜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는지 위정자들은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대처와 대형병원 봐주기 의혹까지 불거지는 마당에 정확한 메르스 방지 매뉴얼조차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한 무능함, 메르스 첫 환자가 확인된 지 14일이 지나서야 첫 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등 허둥대기만 청와대. 모두 다 해당된다.

메르스 확산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을 비롯 대형 병원들은 결국 일부 폐쇄가 결정됐다. 그리고 뒤늦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나서고 있으나 좀처럼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망자만도 19명에 이르고 관리대상도 5천명을 훨씬 넘었다.

보건복지부의 초기대응 실패와 대형병원 감싸기의 오류가 빚어낸 결과 치고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때문에 지금도 어디 가서 치유 받고 위로 받을지 난감해 하고 있다. 사망한 환자들의 사연은 더욱 비참하다. 사랑하는 부모 가족의 임종을 보지도 못하고 장례는 커녕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하는 현실, 보는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포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치권도 각자도생이긴 마찬가지여서 답답하다. 어제 국회가 국회법을 통과시켜 청와대로 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모양이다. 청와대 또한 자기 살길을 도모하는 형국이다. 이를 보는 국민들은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메르스로 인해 패닉상태인데 복잡한 정치판의 기싸움까지 겪어야 하니 심신이 괴로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전염병 확산 막는 것보다 도전 세력 견제하는 일이 더 다급한 일이었던 모양이다’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면 나라와 국민 사이 불신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사람과 사람 관계까지 피폐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국가의 존재 의미는 재앙 때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각자도생 한다면 이런 믿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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