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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우리민족의 슬기는 어디로…

 

우리 민족은 어떤 모순이나 대립을 조화시킬 줄 아는 슬기를 가졌다고 해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지식인들은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 반대자라는 것은 큰 안목으로 보면 협조자이고 지지자이다. 그래서 서양 선진 민주주의에서는 야당을 ‘반대 당’이라고 한다. 서로 대립되는 사상과 의식이 부딪치는 그 역동성이야말로 창조의 활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대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개인이나 사회·국가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것이 못된다. 개인이 자기의 앎에 대해 아무리 확신을 가졌더라도 불완전한 것이 인간이라는 겸허함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회의하고 반추할 수 있어야 대립과 파쟁(派爭)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민족은 고래로 대단히 애매한 두 극단을 조화시키고 모순을 화합시키는 중용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종교로서의 불교가 그랬고, 일찌기 육체와 정신이라는 이원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세상에는 절대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생활원리가 그랬다. 그러나 유교(儒敎)를 종교나 철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문으로 익히면서 지식이나 정치가 왕왕 극단주의로 흘러 반대를 용납하지 못하게 됐다. 서양의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생활종교가 되지 못하고, 지나친 엄격주의에 빠져 수많은 파쟁을 낳은 것이 그렇고,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너무나 도식화되고 정형화됨으로써 대립과 극단 이외에 다른 것이 발붙일 틈조차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모순이 발생했을 경우, 그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만 독선과 편견에 의한 파당과 투쟁을 방지할 수 있어서 이다. 서양의 민주주의가 세계화될 수 있었던 것도 지(知)에 대한 끝없는 회의(懷疑)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토론을 통한 합의만이 가장 안전한 통합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 427~347)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지(知)의 거인이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 앞에 신(神)이 나타나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에 빠져 괴로워했다. 그러나 신의 말이니까 틀릴 리는 없겠지만,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찾아내 신에게 알려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전 아테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정치가는 물론 많은 현자(賢者)들을 찾아가 진리와 선(善)과 미(美)에 대해서 토론을 해봤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를 안다고 주장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모두가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 즉 ‘인식의 차이’를 깨달았다. ‘나는 그들처럼 모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적어도 본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신은 역시 틀리지 않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지(無知)의 지(知)’라는 소크라테스의 지적 세계다.

서양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모든 사물을 먼저 의심어린 시선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은 사고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정하는 모순을 낳게 되어, 사고하는 자신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인식을 확인시키고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렇게 서양의 사유(思惟)체계가 일단 부정과 의심으로 시작해서 부정의 부정과, 회의와 토론을 거듭해서 합의와 긍정으로 이르는 길을 걸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세계전파도 가능했다.

우리사회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의식적인 삶의 유기적 결합체를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반대를 부정으로, 토론을 대립으로, 협상을 패배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정치가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인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정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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