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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톈진(天津)의 추억

 

북경에서 120㎞ 떨어진 톈진은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바다에 인접해 있어 예부터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 홍콩 버금가는 도시경관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톈진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도심 곳곳 있는 고색창연한 이국적인 건물들이다.

1856년 광저우에서 일어난 애로호 사건이 계기가 돼 1858년 개항한 톈진은 중국을 탐내는 외세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특히 영국은 무력을 동원, 톈진을 점령하고 톈진의 8배에 달하는 지역을 조계지로 정했다. 그 후 1902년까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9개국의 조계지가 들어섰다. 지금 톈진의 아름다운 야경에 한몫을 하고 있는 건물 대부분은 당시 지어진 것들이다. 외세침략의 전초기지였다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이 같은 건물들로 인해 톈진은 ‘만국건축 박물관’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톈진 중심가에 있는 오대도(五大道) 거리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 톱10에 들어가 있는 이 거리엔 서구 열강이 중국을 지배했던 조계지답게 당시 남겨진 유럽풍 건물이 2000여 개나 있다. 그중에서도 250여 개의 건물은 그 시대를 대표할 정도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야간엔 조명을 받아 골목에 들어서면 마치 유럽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톈진은 1976년 대지진 여파로 2만4000여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지만 다행히 이 같은 건물들은 무사해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톈진의 원래 지명은 직고였다. 직고는 명나라를 건국한 영락제가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길 때 마지막 출발지이기도 했다. 영락제는 새로운 수도인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 머물렀던 직고에 톈진(天津)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부터 600년 전 일이며 ‘천자의 나루’라는 뜻이다. 그 후 톈진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 중국 4대 직할시로 성장하는 한편 베이징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 톈진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톈진항 주변 보세구역, 빈하이 경제개발구 등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톈진은 같은 항구도시이면서 수도와 인접해 있어 지리적 여건이 비슷한 우리나라 인천시와 일찍 교류를 맺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12월 자매결연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자매결연은 수교 이후 우리나라 도시 가운데 중국과 맺은 최초의 교류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교류로 끝내지 않고 서로 관계공무원까지 파견시켜 상주토록 했다. 인천시는 톈진시에, 톈진시도 인천시에 별도의 사무실을 개설, 업무를 보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사무실은 2003년까지 10년 동안 운영되다 철수했지만 활발한 교류는 계속 되고 있으며 지금도 과거의 아픔과 미래의 성장을 공유해 가고 있다. 교류의 이면에는 슬픈 역사도 한몫 했다. 두 도시 모두 개항의 역사가 외세의 강압으로 이루어졌고 지역을 조계지로 쪼개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기업 2500여 개가 입주해 있고 교민 4만여 명이 살고 있는 텐진과 베이징에서 약 1년 반 동안 특파원 생활을 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기억이 새롭다. 인천-톈진 양 도시의 발전을 위해 의욕 있게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동분서주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서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추억과 사연이 남아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톈진의 빈하이 경제특구에서 7일 전 대형 폭발사고가 있었다. 지금까지 184명이 사망·실종됐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제적 피해도 어마어마한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빨리 떨치고 일어나길 기원한다. 그리고 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찜찜함도 사라지길 기대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 등 인터넷에서 ‘톈진발 독극물 비가 내린다’ ‘폭발로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 700t이 사라졌으며 바람을 타고 한국에 온다’ ‘피부에 독극물 빗물이 묻으면 안 된다’며 외출을 자제하라는 메시지와 괴담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이웃나라의 폭발이 한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이 같은 소문으로 인해 좋은 추억이 나쁜 현실로 바뀌지 않을까 염려돼서 더욱 그렇다. 물론 정부가 서둘러 ‘폭발 오염물질은 공기보다 무거워 날지 못한다. 바람도 한반도로 안 분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어 다행이지만 말이다. 아울러 생각해 볼 것도 있다.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 또 어떻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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