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이준구의 世上萬事]한자(漢字) 어차피 가르칠 거라면…

 

1960년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신문에 한자를 꽤나 많이 썼다. 기사내용인 본문은 물론 큼지막한 신문제목도 한자가 많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보시는 신문을 같이 보며 어깨 너머로 한자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인 내가 큼지막한 한자 제목을 자꾸 묻는 게 기특하게 여기셨던지 항상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곤 했다. 며칠이 지나면 다른 면에 같은 한자가 나왔다. 아버지께 또 물었다. 그때마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등 한자의 제자원리와 부수 등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다. 한자를 익히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신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교과과정에 한문시간이 있었다. 신문을 보며 익힌 보잘것없으면서도 알량한 한자실력이 한문선생님에게 정식으로 배우며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으로 차츰 빛을 발하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1학년 때까지 한문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은 쓰기에 알쏭달쏭한 한자가 나오면 나를 불러 칠판에 쓰게 하실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하루는 안방에서 신문을 읽던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이게 무슨 자지?” 아버지가 나를 시험하려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로 기억이 안 나셨던 모양이었다. 물어보신 한자를 답해드리니 무척 대견스러워 하셨다. 이런 걸 두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던가? 학창시절 나는 한자의 덕을 톡특히 본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한문 교과서 말고도 다른 교과서에 한자에서 나온 어휘가 많이 담겨 있었다. 국어 국사 세계사 지리 등 인문과목에서부터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자연과학 과목에 이르기까지 한자로 인해 남보다 이해를 더 빠르게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로부터도 ‘아는 것이 많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서두부터 한자교육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 한자는 적어도 나에게 학업에 흥미를 갖게 했고, 지금까지도 한자공부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예찬할 수밖에 없다. 젊은 기자시절 수원시내 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 20여명과 중국을 여러 날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교장선생님들 대부분이 젊은 나에게 간판이나 플래카드에 적힌 한자를 물어보실 정도였다. 희한한 간자체에는 막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알려줄 수 있던 것은 어려서부터 가졌던 한자에 대한 관심과 공부 덕택이었다.

광복절을 며칠 앞둔 지난 13일 한글 교과서 장례식을 하는 장면이 방송에 보도됐다. 교육부에서 2018년부터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한글문화연대 등 한글 관련 53개 단체가 모인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서울 도심에서 한글 교과서의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이들은 “교육부는 일본식 한자혼용 주장자들 말만 듣고, 그것도 광복 70주년에 한자 병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신문과 대학 논문도 한글로만 쓰는 세상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게 되면 한자 사교육 시장이 번창하고 초등학교 학생의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나란히 쓰자는데 반대하는 쪽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약 1300년 전에 중국에서 한자를 들여와 썼다. 현재 영어가 그러하듯이 한자 역시 우리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자’를 배워야 우리말인 ‘국어’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지 중·고교에서 한문과목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에서 학과마다 필요한 한자를 다시 가르치는 수고를 더한다. 한자를 어치피 가르칠 거라면 어려서부터 자주 접하도록 하는 게 좋다. 영어는 되고, 한자는 안 되는 건가. 한자를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려는 부모들도 그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기 때문이지 사교육을 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교까지 제대로 한자교육을 시킨다면 오히려 사교육은 줄어들 수도 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