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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효도까지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

 

엊그제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일선 기자시절 함께 했던 선후배들이 참석, 오랜만에 잊혔던 얼굴들도 보고 담소도 나누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화제는 외아들에다 조금 늦게 장가를 가는 신랑에게 모아졌다. 살림집은 어디다 마련했데? 외아들이지만 부모 모시려고 할까? 등등. 그러자 나이 드신 선배가 손사래를 치며 ‘나이 먹은 자식들도 노부모를 모시지 않는데 젊은이가?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린다. 덕분에 식사 분위기마저 머쓱해졌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다른 선배가 재산이나 물려주면 모를까… 언감생심이라고 동조 했다. 하지만 손사래를 친 선배는 그것도 웃기는 얘기라며 핀잔을 줬다.

그 선배는 신문에도 난 기사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80세 되는 친척 분이 경기도 성남에 살고 있는데 4년 전 아들이 자기를 부양하겠다고 말해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부부는 아파트를 챙긴 후부터 태도가 달라졌고, 작년 가을부터는 노골적으로 “양로원에 들어가시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가 난 친척은 아파트를 되돌려 받으려고 법적으로 소송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환수 불가였다고 한다. 부모-자식 간에 양도·양수한 것도 일반인과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이미 매매가 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민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자식에게 다 주면 굶어 죽고, 안 주면 맞아 죽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며 오죽하면 ‘고령화 시대에 자녀도 힘들어요. 효(孝) 요구하지 맙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등장했겠는가.

요즘 세태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이 일부 못된 자식들에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이를 반영하듯 얼마 전 SNS에서 떠돈 이야기가 ‘패륜적 글’이라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서글픈 풍속도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명 대학의 교수가 학생들에게 부모가 언제 죽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63세라고 답했다고 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릴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부모가 은퇴해서 퇴직금을 남겨주고 바로 죽는 게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비록 극소수의 의견이지만 섬뜩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늙은 부모를 방치하거나 유기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많았다. 학대도 비일비재했다. 대부분 아들딸에 의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딸이나 배우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존속 범죄 발생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패륜은 궁핍한 생활경제로 인해 황폐해진 도덕성이 천륜(天倫)마저 저버리게 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사회는 이것도 모자라 미리 재산을 상속받고도 부모를 학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요양병원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87세의 이모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부양하겠다는 말을 믿고 10억 원 상당의 땅을 상속했으나 아들은 요양병원에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91세 최모 할머니는 큰 아들에게 3억 원의 땅을 물려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폭력이었다.” 지난주 국회의원 회관에서 있은 불효자식방지법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이 같은 불효자의 사례들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불효를 국법으로 다스렸던 고려 때는 부모 공양에 소홀하면 2년의 구금형, 부모를 구타하면 목을 베는 참형, 실수로 구타해도 귀양을 보내는 유형에 처했고 조선의 대명률(大明律)에서도 비슷한 처벌 조항이 있었다. 이처럼 국가에서 아무리 효를 강조해도 당시 불효자는 존재한 것으로 보아 효도는 법 이전에 윤리의 영역임이 분명한가 보다.

패륜자식에 비해 부모는 다르다.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를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아서다. 부모는 자식이 미워도 재산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사업실패·실직 등으로 어려워진 자식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 재산을 받고도 부모를 보살피지 않는 자녀가 밉지만 그렇다고 법까지 들이댈 용기마저 없는 것 또한 부모 맘이다.

이런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국회가 ‘불효자 방지법’을 9월 정기국회에서 입법화할 모양이다.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식에게 물려준 재산을 쉽게 돌려받도록 민법을 개정하고, 부모를 폭행한 패륜아의 처벌을 강화하도록 형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이 발효되면 효도가 넘치는 우리사회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돈 주고 매 맞는’ 부모의 숫자가 줄어들 뿐 진정한 효의 정신이 살아나기에는 부족함이 커서다. 세상이 변해 효도까지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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