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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때’를 기다릴 것인가, 만들 것인가

 

세상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꽃이 필 때가 있으며, 그것이 여물어 열매가 맺을 때가 있고, 두터운 껍질을 세우고 한없이 깊은 동면에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맞추지 못하면 꽃은 봉오리도 피우지 못하고 질 것이며, 열매는 채 익기 전에 말라 비틀어져 버려 종국에는 썩어 버리고 만다. 바로 세상의 때와 나의 때를 조화롭게 풀어갈 때 햇살 가득 머금은 튼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때를 생각할 적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세상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속살을 옹골지게 채워나가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소위 말하는 순리대로 풀어 간다는 것이 이것에 속한다. 문제는 세상의 순리라는 것이 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지난한 기다림을 통해 얻어 지는 것이라 마음속에 참을 ‘인(忍)’자를 수십 아니 수백 번을 써내야 가능한 일이다. ‘인(忍)’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이 얼마 힘든 일이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마음 심(心) 위에 칼날 인(刃)자가 떡하니 올라타 있는 형국이다. 아니 좀 더 능동적으로 풀어 보면 내 마음에 칼 하나를 찔러 넣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어야 하니 그 고통과 슬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참는 것이며 견디는 것이다. 그래야 ‘때’가 왔을 때, 마음속에 품은 칼을 뽑아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칼을 뽑아 누군가를 베려 한다면, 그 기다림의 가치는 무의미해 질 것이며, 그 칼을 생명을 살리는 수술 집도용 칼처럼 사용한다면 더 큰 길이 펼쳐질 것이다. 무예 수련에서 흔하게 듣는 인내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때를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한 겨울에 꽃을 피우려면 햇빛과 온도가 높아 져야 하는데, 이것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다. 온실을 설치하고, 난로를 틀고, 조명을 켜서 한 겨울에 화사한 꽃잎을 피워 내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수십, 수백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렇게 피워낸 꽃이 오래도록 향기롭게 생명을 유지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때를 만들어 가려 한다면 그 보다 더 큰 희생과 열정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때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시키면 그것이 선구자이며 영웅이 될 것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것이 또 다른 순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좌절을 동반 할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풀어 가야만 한다.

전쟁을 고민할 적에도 그 ‘때’를 이해해야 한다. 조선시대 무관을 뽑는 무과시험에서 이론시험의 주제는 상당부분 그 ‘때’와 연결되어 있다. 어떤 때 군사들을 훈련시켜야 하고, 어떤 때 적을 공격해야 하는지 등 냉철한 판단력을 묻는 것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오자병법(吳子兵法)’에는 ‘요적편(料敵篇)’이라고 하여 적을 살피는 장이 등장하는데, 바로 ‘때’를 찾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보면 모두 15가지의 때가 등장하는데, 모두 이때에 적을 공격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行列未定可擊(행렬미정가격)’이라 하여 대오가 정돈되지 않았을 때, ‘勤勞可擊(근로가격)’이라고 하여 적이 일에 시달려 지쳐 있을 때, ‘將離士卒可擊(장리사졸가격)’이라 하여 지휘관이 병사들과 떨어져 있을 때, ‘心怖可擊(심포가격)’이라 하여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과 때에 대한 판단은 오직 내가 하는 것이기에 상대의 기만전술에 빠진다면 그 ‘때’는 기회가 아니라 파멸의 순간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때’를 기다리거나, ‘때’를 만들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냉정한 판단력과 정확한 실행력이다. 늘 가슴은 뜨겁게, 머리를 차갑게 풀어 간다면 그 ‘때’ 큰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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