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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한가위를 보내며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와 친지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연휴기간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오간 차량의 숫자가 572만대에 이른다니 우리나라 등록차량을 2천만대로 보았을 때 1/3 가까이 차량이 움직였다. 어마어마한 이동이다. 시간대별로 귀성, 귀경차량이 꼬리를 물어 정체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고대 삼한시대부터 내려온 농경문화의 잔재인 추석을 없애자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1년에 한번이라도 멀리 떠나온 고향을 찾는 일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추석기간의 기회비용도 얘기하지만 ‘고향’과 ‘가족’이라는 두 단어를 이길 수는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안한 경제상황, 불어나는 가계부채,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대는 청년들, 50대에 벌써 직장에서 퇴출된 가장들…. 게다가 민생우선을 외치는 정치권이 자기네 당끼리 편을 갈라 싸움질이나 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경제나 정치상황이 아무렇더라도 가족끼리 오순도순 마주 앉아 정성껏 마련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을 느껴본다는 것이 명절의 더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맹자도 군자삼락(君子三樂)중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함을 첫 번째로 꼽지 않았는가.

연휴기간 중 서울에 살고 있는 어렸을 적 친구들이 수원에 찾아왔다. 명절 아니라도 가끔씩 와서 광교산도 가고, 수원 통닭거리에서 옛 이야기를 나누는 죽마고우들이다. 그날의 화젯거리는 다양했다. 코흘리개 시절의 여자친구 이야기에서부터 부모 모시고 자식 기르는 이야기, 초·중학교 때의 추억을 나누며 유난히도 둥글고 커다란 보름달 아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랄까?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고향 언덕에 둔다고 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논어의 학이(學而)편에도 공자께서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訪來 不亦說乎)라 했듯이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주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60이 채 안 된 나이지만 우리는 벌써 지난 얘기들을 주로 하게 된다. 노인들이 볼 땐 괘씸한 얘기겠지만 우리 역시 살아온 삶보다는 앞으로의 삶이 짧기 때문일까?

한창 추억에 젖어있는 터에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친구 어머님의 부고다. 연휴 시작부터 우울한 소식이었다. 문상객이 별로 없으려니 하는 생각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여느 집은 명절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즐거움으로 활기찬 모습이겠지만 한쪽은 슬픈 상념에 젖어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생사의 경계선 상에서 양 다리를 걸치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추석 당일 아침에는 아버님 댁에 들러 식구들이 식사를 했다. 90이 훨씬 넘은 노환의 아버님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으셨다. 산소와 처가를 다녀와 다시 집에 왔다. 아니나 다를까 기력을 잃으신 아버님을 119 구급차에 의지해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궂은 일을 마다 않는 소방공무원들에 늘 감사하고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오시며 4형제를 훌륭하게 키우셨고, 명예도 얻으신 아버지다. 그러나 지난 해 봄 어머님을 하늘나라에 보내시고는 삶의 의욕을 많이 잃으신 것 같다. 병원에서 밤새 많은 것을 느꼈다.

날아가는 새도 맞출 위세를 떨쳤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90세다. “생전에 미운 놈보다는 오래 사는 게 승자라고 생각했는데 90세가 되고 보니 미워할 사람도 없더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오로지 명예만을 지키며 90 평생을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판의 싸움도 한낱 부질없는 짓이다. 권력의 싸움도 그렇다. 인생행로는 경주(競走)가 아니다. 가는 걸음걸음 음미하는 여행일 뿐이다.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음 좋겠다. 남의 ‘다름’을 인정해주고 온갖 욕심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한가위의 끝자락이자 가을의 문턱이다. 10월을 여는 첫 날에 나는 이런 기도를 하고 싶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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