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우리 무예의 역사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무예는 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반만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기에 무예는 항시 준비해야할 기본 덕목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였다. 이런 이유로 고대부터 국가적으로 각종 무예에 관한 전문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武臣政權)이 들어 설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는 처음으로 과거시험을 통해 무관들을 공식적으로 배출해 내기 시작하면서 무예 수련에 관한 상당한 체계화를 이뤄내었다. 대표적으로 무예 수련에 활용한 각종 병법서들을 편찬함으로써 수련의 표준화와 안정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무과시험 심사를 위한 객관적 기준을 삼을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무예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수련을 통해 전문화의 단계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무예서 중 가장 오래된 사료는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 중 만들어진 ‘무예제보(武藝諸譜)’(1598)였다. 이 무예서에는 당시 전란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의 군사무예인 곤방·등패·장창·당파·낭선·쌍수도 등 모두 여섯가지 무예를 실제 훈련법까지 세심하게 담아 내었다. 이후 맨손무예인 권법을 위한 전문서 ‘권보(拳譜)’(1604)와 ‘무예제보(武藝諸譜)’에서 빠진 군사무예를 보완하기 위하여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1610)가 광해군대에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그리고 영조대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던 때에 보병들이 익힌 무예를 중심으로 열여덟 가지의 무예가 ‘무예신보(武藝新譜)’(1759)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1790년 4월에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으로 불린 정조(正祖)의 명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완성되었다. 이 무예서에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남긴 열여덟 가지의 무예에 기병들이 수련해야 할 마상무예 6가지를 더해 총 스물네 가지의 군사무예로 정립하였다. 이 병서에 수록된 것을 우리는 ‘무예24기’라고 부르며, 조선을 지켰던 국기(國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단순히 우리의 전통 군사무예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예까지 조선화시켜서 정리하였다. 문화적 측면에서 중국색이다 왜색이다라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내 나라 내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배워 진정한 ‘우리 것’으로 수용하는 문화통합의 병서이기도 했다. 그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대표되는 ‘실학의 정신’이다. 내 처자식은 굶어 죽을 판인데도 사서삼경이나 처마 밑에서 줄줄 외는 갓끈 떨어진 양반정신이 아니라, 한국전쟁의 피난살이를 넘고 산업화 과정에서 묵묵히 세상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의 정신’이기도 하다.

특히 이 병서에는 중국와 일본에서 수용한 군사무예에 대하여 명확하게 연원을 밝히고 조선과의 차이를 선명하게 글과 그림으로 풀어 놓았다. 심지어 요즘으로 치면 동영상처럼 익힐 수 있도록 작은 그림을 연결지어 그려 넣어 움직임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거나, 그림의 크기나 상대와의 거리를 지도제작에서 사용하는 백리척(百里尺)을 활용하여 보다 독창적인 방법으로 무예를 설명하였다. 거기에 무예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문을 읽지 못하는 낮은 계층의 군사들을 위하여 한글본을 따로 만들어 붙여 조선의 모든 군사들이 익힐 수 있는 진정 실용의 무예서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 무예의 전통은 ‘무예24기’의 핵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전투기술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문화의 정수가 들어가 있으며 창조적이며 활달한 우리 민족의 기상이 담긴 것이다. 또한 주변 무예 문화와의 통합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다문화의 시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의 확인과 민족 통합을 바탕으로 한 국격의 세계화를 위해 무엇이 진정한 살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시기다. 무예는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 주고 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