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준성칼럼]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벗인가

 

어제 아침, 조간신문 헤드라인을 훑어보던 중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친척 없다…韓, OECD중 가장 심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기사 전체 내용은 한국이 사회관계망, 건강 만족도, 대기질 부문에서 꼴찌를 기록했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도 최하위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와 관련한 점수에서 한국은 72.37점을 기록해 OECD(88.02점) 평균에 크게 못미처 회원국 중 최저였다는 기사가 첨부됐는데 그것을 제목으로 뽑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기며 상상을 해 봤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가. 또 만약 내가 죽으면 영정 앞에서 날 기리며 눈물을 흘릴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머릿속에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곰곰이 따져 봐도 다섯 손가락이 다 꼽히지 않는다. 진정한 절친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왠지 섭섭함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인간관계 유지를 좀 더 잘할 걸….’ 지나온 삶도 왠지 부끄럽게 생각됐다.

우리들은 흔히 비슷한 나이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벗 혹은 친구라 부른다. 그리고 이 같은 사이를 ‘갑자기 고민스런 일이 생겼거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혹은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당장 편하게 만나자고 해서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 스스럼없이 만나는 사이라고도 정의한다.

하지만 이런 사이도 친구 관계의 바탕을 이루는 절대적인 것, 수용 신뢰 존중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금방 소멸되고 만다. 사람마다 여러 종류의 친구를 사귀고 있지만 우정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예부터 인간이 맺는 여러 종류의 관계에서 ‘친구’라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벗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는 진리를 이야기 할 때 곧잘 인용되는 다음 내용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제자와 함께 길을 가다가 향을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다. “저 향이 든 주머니를 집어 한 시각만 잡고 있다가 도로 놓고,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 제자는 잠시 후 “손의 향기가 끝없이 미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좋은 벗’을 사귀면 그와 같다고 이야기 했다. 다음날 제자는 석가모니와 함께 시장 생선가게 앞을 지나게 됐다. 석가모니는 어제와 같이 가게 앞에 멈춰선 다음 “저 썩은 생선 위에 펴놓은 갈대를 한 움큼 쥐고 잠시 있다가 땅에 놓아라. 그리고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오직 부정한 비린내가 날 뿐입니다”고 제자가 대답하자, 석가모니는 ‘악한 벗’을 사귀면 악업과 악명이 그 비린내처럼 떨치게 된다고 했다.

친구는 공감의 대상이다. 자신의 고민이나 갈등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린내를 풍기며 해를 입히는 것 또한 친구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존재와 가치를 알아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절친’의 모습 중 하나이지만 우린 불행하게도 이런 절친 갖기가 어렵다.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관중의 배신과 비열함을 감싸 주며 그의 존재를 인정해 준 포숙아의 우정이나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린 백아(伯牙)의 우정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맺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익숙해져 있는데도 결과를 보면 ‘아니올씨다’가 많다.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말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만금을 얻기는 쉽지만 벗을 얻기는 어렵다’는 속담처럼, 동서고금을 떠나 내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친구를 얻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해서 우리는 술자리에서만 친한 친구라는 주우(酒友), 또 얼굴만 알고 지낸다는 면우(面友)가 많은지도 모른다. 필요할 때만 찾고, 쓸모가 없으면 거들떠보지 않는 벗은 벗이 아닌데도 말이다.

지금이야 한두 살만 많아도 선배 대접을 깍듯이 하지만, 예전에는 아래위 열 살 이내로는 으레 벗으로 삼았다. 정말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눈빛만 봐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말없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면 나이를 뛰어넘어 친구라 할 수 있지만 돌이켜 보면 이 또한 희망사항이다. 진정한 친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를 상상하며 어제 아침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벗인가’ 새삼 생각해 봤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