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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두렵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지만

 

최근 지인들의 부고(訃告)가 유난히 많았다. 지난주부터 열흘 사이 6건이나 됐으니 이틀에 한 번꼴도 넘는 셈이다. 지금까지 기억하기로 짧은 기간 내 최다인 듯싶다. 교통사고를 당한 젊은 아들을 가슴에 묻는 장례를 비롯 지병으로 수년간 앓다가 가족 곁을 떠난 부인과의 슬픈 이별식, 연로하셨지만 약간의 잔병치레에도 정정하시던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 등 내용도 각기 달랐다.

이런 사연들은 으레 문상을 하며 듣는다. 그리고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비슷한 가족들의 슬픔이 있었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슬픈 감정은 잠시 그때뿐이다. 그리곤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다시 허둥지둥 눈앞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은 이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거리가 멀다. 누구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고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피하고 싶고 두렵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건강한 사람도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두렵기 만한 존재, 영원히 피하고 싶은 대상’ 죽음을 잘 준비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아서다. 후회 없이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잘사는 방법 중 하나라며 실천에 옮긴 일화도 여럿 소개되어 있다.

2007년 1월 81세로 사망한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가 다음과 같은 부고 동영상을 남겼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미리 제작한 동영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의 ‘죽음준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고 한다.

2년 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가 쓴 책 ‘내 죽음의 방식 엔딩 다이어리 500일’이 화제가 됐었다. 인생의 황금기인 40대를 맞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는 비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번민하다가 자신의 장례식을 기획하고 죽음을 맞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책인데, 그가 남긴 유고이자 임종의 기록은 지난해 말 일본에서 출간된 뒤 1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물론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을 준비하는데 바람직한 매뉴얼이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준비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어차피 맞이해야할 죽음이라면 먼저, 자신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원인을 점검하고 그러한 두려움을 경감·해소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지를 염두에 두는 것은 공통적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갑자기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해 후회 없는 죽음을 맞도록 하자는 취지의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Well Dying)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할 때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유언장과 사전 의료의향서 작성, 장례나 납골당 준비, 상속 등을 마무리하려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언젠가 나이든 선배들과 저녁을 먹으며 죽음 준비에 관한 대화중 이런 이야기가 오고간 것이 기억난다. 한 선배가 “유명한 미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문구를 썼다는데 난 무엇을 남길까. 소위 글쟁이로 늙었다고 자부하는데 멋진 문구를 넣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자 또 다른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언 김미화는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비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는데 좀 가벼운 게 좋지 않을까. 와서 보는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게”

수목장을 하거나, 납골당에 안치되거나, 매장을 하거나 이 세상에 마지막 한마디쯤 남기고 싶다면 어떤 문구가 좋을까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일종의 과정이다. 또 평소에 자신의 죽음의식을 어떻게 치렀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준비 중 하나일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면서 갈 수는 있다. 그러려면 우리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죽음이지만 매일 매일 겪고 있는 우리의 삶처럼 죽음 또한 ‘준엄한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바라는 평온한 죽음은 누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안겨주는 선물이 아니다. 내가 직시하고 정성스레 준비해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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