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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인생의 겨울을 가꿀 줄 아는 영혼

 

엊그제가 소설(小雪)이었다. 24절기 중 어느덧 스무 번째 절기가 지났으니 시간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섬뜩한 느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심정을 파고들지 않을까 싶다. 나만 그럴까. 아니다. 이즈음을 지나며 느끼는 소회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것 같다. 모두가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그토록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도 이 같은 세월의 무상함 때문이 아닐까.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이 문제를 고민한 사람이 있다. 지혜의 왕이라 불렸던 솔로몬이다. 부와 명예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가져 봤지만 결국 인생의 석양 앞에서 회한에 가득 차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나 ‘가는 세월’만 탓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시인 도종환은 떨어진 잎은 다음 해 봄을 예약하고, 흐르는 물은 바다를 향한다고 하면서 인생의 어느 한 시점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라고 표현했다.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고맙고,/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다/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11월을 ‘모두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이라고 불렀던 인디언들의 말처럼. 인생을 허무라는 절망에 매몰시키기보다는 남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투자한다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 병사를 키우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루를 쓰기 위하여 10년을 준비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이 반나절을 위한 것이든 한순간을 위한 것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농부가 무디어진 낫으로 일하는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묻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할 일도 많은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그러자 농부가 말했다. ‘아들아, 무딘 연장을 가는 건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인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또 인생을 멋있게 완주할 수 있는 일련의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아침저녁 기온차가 제법 크고 이제 겨울 준비를 해야 할 때임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면 동물들도 활동을 줄이고 지방을 많이 흡수, 저장하면서 동면에 들어간다. 나무는 자신이 얼지 않기 위해 물이 가지 끝까지 공급되지 않도록 한다. 내년을 기약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람도 겨울이 되면 갖가지 준비를 한다. 김장을 하고, 바람이 새지 않도록 문틈을 단속하고 두툼한 이불을 꺼낸다.

그러나 11월을 보내며 이러한 일상의 준비보다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슬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다가올 어려움에 대처하지 못해 고생하는 이들을 많이 봐 와서다. 한 해를 출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영부영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처럼 세월이 가듯, 인생의 겨울도 순식간에 찾아온다. 삶에 치어 그냥 달리다가 걷고, 걷다가 달리면서 삭풍 부는 그 겨울을 맨몸으로 맞이 할 것인지, 아니면 죽는 날까지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남은 시간만이라도 인생의 겨울을 준비 할 것인지.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영혼을 가꿀 줄 알고 지혜로운 인생은 겨울을 준비할 줄 안다고 했는데….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있다고 한 도종환 시인처럼 인생의 겨울을 위해 올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11월 마지막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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