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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나를 돌아보게 한 송년 모임 일화

 

송년모임 최고의 안주는 역시 시사 풍자인 모양이다. 서로 킥킥대며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수준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서도 그랬다. 장소는 중식당이었는데 술잔이 서너 순배 돌고 분위기가 제법 무르익자 한 친구가 종업원을 불렀다. 그리고 탕수육을 추가로 시키며 요리를 찍어 먹을 간장 종지를 갖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도 두사람에 한 개씩인가” 물었다. 종업원이 의아해 하며 한사람에 하나씩이라며 고개를 갸우뚱 해 댔다. 친구들 또한 어리둥절해 하며 간장종지 얘기를 한 그를 쳐다 봤다. 별 싱거운 친구 같으니 하는 표정으로.

그러자 그 친구는 월초부터 최근까지 인터넷과 모바일을 강타한 화제작(?)이라며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너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신 얘기 한다’는 취지로 내 눈치까지 보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서울 유력 중앙지의 부장이 동료 3명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회사 근처 중국집에 갔고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 종지가 두개밖에 안 나왔단다. 그래서 ‘사람이 넷인데 왜 두개인가’ 물었다고 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간장은 2인당 하나입니다’라며 추가로 갓다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섭섭하게 여긴 부장은 며칠 뒤 ‘간장 두 종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 중국집의 불친절한 서비스를 성토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중국집을 조졌다’는 시쳇말을 쓰며 칼럼 말미 내용이 더 웃겼다고 했다. ‘나는 그 중국집에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간장 두 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그 옹졸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결론지으며 “그 식당이 어딘지는 밝힐 수 없지만 ’중화’ ‘동영관’ ‘루이’는 아니다”라고 친절히 힌트를 준 게 그것이라 했다. 참고로 그 언론사 인근에 4개의 중국집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기껏 간장 두 종지를 더 주지 않는다고 거대 언론이 칼럼을 써야 쓰겄냐? ‘안 그러시나 정 주필’하며 나를 쳐다봤다. 이어 이를 패러디한 질문도 하나 던졌다 ‘나는 그 신문을 알고 있는데 그 신문이 무슨 신문인지는 밝힐 수 없다. 중앙·동아·경기는 아니다. 어디일까∼요’

얘기를 듣고 친구들이 한 마디씩 했다. ‘에이 너무 했네’부터 ‘작은 중국집에서 느낀 섭섭한 감정을 거창한 칼럼으로 토해냈다면, 만약 이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으로 지적한다면 대단하지 않을까’ 하는 비아냥까지. 그리고 이내 ‘기자 앞에선 비밀을 얘기 하지 말아야 한다’ 느니 ‘뭐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기자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등등 해묵은 언론의 부정적 시각도 실타레 풀리듯 나왔다. 나를 의식한 듯한 친구가 ‘다 아는 사실 고만들 하시고 이제 주제를 바꾸지’라고 말하자 얘기들이 잦아들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맘이 개운치 않았다. 최고의 안줏거리로 언론인이 간택(?)된 것도 그렇지만 같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존재감이 초라해 보여서 였다.

많은 사람들은 언론인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니 얼마나 박학다식할까. 연륜이 쌓이고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정작 그렇지만도 않다. 송년 모임에 가서는 새로운 뉴스를 주워듣는데 귀를 쫑긋 세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간혹 친구들에게 그것도 모르냐고 곧잘 타박도 받는다. 사실만 쫓다 보니 의외로 각종 여론이 충돌하는 SNS 뉴스에는 어두울 때가 더 많다. 이번 송년회 최고 안주감도 역시 그랬다. 해서 알고 있는 듯 웃음을 띄웠지만 더 초라해 보였다.

언론인이란 뉴스를 다루고 사회를 비평하며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 하는 직업이어서 누구보다 빠르고 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 같은 정보의 전달을 정확히 해서 독자들에게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 또한 기자들의 사명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왔다. 여기에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다면 언론의 가치는 그만큼 상실되게 마련이다.

송년회에서 돌아오는 길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고마웠다. 올바른 ‘지역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명을 갖고 올 한해도 여러 글을 썼다. 또 나름대로의 나의 주장이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심혈도 기울여다. 그 얹줍잖은 자부심의 나를, 송년모임 안주거리가 되돌아보게 해 주어서다. 올 한해 불편부당함은 없었는지, 공평하지는 않았는지 곱 씹어 보며 내년을 기약 할수 있어서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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