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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을미년을 정리하고픈 마음속 시(詩)

 

12월도 이미 스무날 넘게 지워졌다. 이제 남은 날짜라야 고작 일주일 남짓이다. 빠르다 못해 시위를 떠난 살 같다는 표현이 더욱 실감난다. 이처럼 한 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공연히 마음만 바빠진다.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일 게다. 그러면서 연 초에 기원했던 소망들을 되돌아본다. 행복을 최우선순위에 놓았었다. 가정의 화목함도 그중 하나였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이루어져 넉넉한 삶도 바랐다. 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키워가며 여유를 갖게 해달라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은 희망사항으로 끝난 것 같다. 오히려 삶에 짓눌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바람같이 지나고 말았다. 돌아보면 모두가 ‘내 탓’이란 생각이다. 스스로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복을 희망으로 삼고 1년을 노력해야 했으나 그러하지 못해서다.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지나간 날짜만 기억날 뿐이어서 더욱 그렇다.

주위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올해는 무엇보다 웃음과 흥을 잃은 한 해였다고들 얘기한다. 즐겁게 한바탕 폭소를 터뜨린 기억은 그저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며 나아지지 않은 살림살이 탓에 한 해 내내 어깨는 짓눌려 힘없이 내려앉았고,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은 고달프고 팍팍하기만 했다고도 했다. 미래를 위한 계획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채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바빠 벌써부터 내년이 걱정이라는 이들도 있다.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 속도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나이의 중압감에 허덕인 그런 한 해이기도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받은 영향력을 새삼 거론치 않아도 우리 삶에 녹아든 생활의 무게는 그리 녹록치 않았음도 부인 못하는 사실이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를 비교하며 현재 자신이 이룬 지위와 부(富)에 대해 아쉬워하고, 노인은 노인대로 묵히고 쌓인 나이 때문에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중년들은 해마다 누적되는, 나이라는 퇴적물에 미래를 묻으며 괜한 세월 탓만 할 뿐이다. 따라서 돌아보면 몸도 마음도 급했다. 일이 있건 없건 항상 쫓겨 다녔고,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우연히 지나다 도심 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을 보고서야 연말인 줄 안 뒤 “벌써”를 되뇌며 삶의 무게에 눌려 지낸 한 해를 야속해 한다.

‘벌써 한 해가 다 갔나?’ 하는 것은 세월의 속도감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1년 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 했다는 탄식의 의미가 더 크다. 만만치 않은 세상 속에서 살다보니 그랬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올해는 특히 경제적인 압박이 거셌던 한 해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서민들의 생활은 리듬을 잃고 각박해졌다. 정(情)도, 이웃도, 사랑도 사라져 제 주장만 목청껏 내세울 뿐 반대의견을 들어주는 여유도 사라졌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네편 내편 가르기에 바빴고 심지어 경제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향해 무조건 어느 한 편에 서도록 강요도 했다. 그 강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해가 성큼 가버리고만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리는 게 있으면 분명 얻는 것이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때문에 가는 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으로만 보낼 수는 없다. 최소한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도 한 얻음일 수 있어서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희망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세상엔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재기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곡절을 겪기도 하고, 잘잘못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또다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성취와 행복은 뒤따라오게 마련이다.

“올해부터 내 달력엔 13월을 넣기로 한다/한 해를 12월로 마감하기 허전해서다/단 하루 마지막 달 할일이 참 많을 것 같다/첫사랑 산골 소녀에게 엽서를 보내고/눈 내리는 주막으로 친구를 불러내고/헐벗은 세월을 견딘 아내를 보듬어주고/또 미처 생각 못한 일 없나 챙겨가며/한 해를 그렇게 마무리 해보고 싶다/….” 시조시인 박시교의 ‘13월’이라는 시다. 을미년(乙未年)을 정리하고픈 마음에 기억 속 시 한 편을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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