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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나이를 먹는다는 것

 

두툼한 달력을 바라본 게 엊그제인데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한 장만이 매달려 있을 뿐이다.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실천한 게 별로 없다. 삶이 무엇인지를 무심하게 번민하는 사이 58년이 지난다. 올해는 58년생이 58세라 우연의 일치라며 신기해했는데 그것도 1주일 남았다. 건방진 소리겠지만 나이 먹는다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큰 형을 바라보면 나도 언제 저렇게 어른이 될까 조급한 생각을 했다. 더 가까운 시절을 돌아보면 대학입시에 머리를 싸 맬 때 대학생 형들이나 군인아저씨들만 보아도 하늘 높아보였다. 막상 내가 그렇게 돼보니 별 것 아니었다. 세월을 훌쩍 넘어 케이블 TV의 토크쇼 제목처럼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이제 영락없는 ‘중늙은이’ 소릴 듣는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우겨대지만 체력이나 현실은 나의 늙어감을 일깨워준다.

어렸을 땐 왜 그리 나이를 한 살이라도 늘리려고 애를 썼는지. 친구들에게 본래 한 살이 더 많다느니, 생일이 빠르다니 하면서 나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이가 들면 점차 책일질 일도, 무서운 일도 많아진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러나 이젠 한 살이라도 줄이려고 안간 힘을 쓴다. ‘부르는 나이’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미국식 ‘만 나이’를 댄다. 얼마 전엔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를 했다. 30~40대로 되돌려준다면 발가벗고 삼십리라도 뛰겠다고. 불가능한 일이고, 부질없는 생각이다. 평균 수명이 아무리 늘어난다 해도 살아온 날보다는 앞으로 살 날이 훨씬 더 적은 나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라고 말들 하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숫자다.

그나마 생활형편이 좋아지고 복지혜택도 많아지면서 평균 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지금의 나이보다는 20% 정도 줄여야 한단다. 60세라 했을 때 20%를 줄이면 40대 후반쯤 된다는 얘기다. 나이는 줄여주지 않지만 기분은 좋은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자께서는 인생 70이면 고희(古稀)라 했지만 지금은 경로당 출입도 자유롭지 않은 젊게(?) 보는 나이다. 70이면 또 ‘종심(從心)’이라 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나이인데 나와는 띠 동갑이다. 70 어르신이 들으면 핀잔하실 소리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12년은 금세다. 그분들도 그랬을 법하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뒤돌아다볼 새 없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이테처럼 주름살도 차곡차곡 쌓여간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했던 고생이야 더 말할 나위 없지만 우리들 역시 부모님의 크나큰 빈 자리를 느끼며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이쯤에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80세까지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 해도 이제 남은 세월은 20년 남짓이다. 지나온 세월도 그랬지만 쏜살처럼 다가올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멋지게 살아볼 걸, 남을 좀 도와줄 걸, 용서할 걸’하는 3가지 후회를 한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꾸물거리지 말고 후회를 덜하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력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가 얼마 전 부인의 빈소에서 문상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는 미운 사람도 많았지만 90이 되니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어진다. 대통령하면 뭐하나. 다 거품같은 거지”. 그러면서 부인에게 평소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다. 때가 되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 놓고 가기 마련이다. 일장춘몽이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버리고, 남을 더 배려하며 사는 지혜를 갖자. 과거를 회상하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싶어하는 ‘무드셀라 증후군’으로 살아가는 건 현실도피일 뿐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달랑 남은 달력 한 장을 바라보면서 힘센 장사도, 돈 많은 부자도, 권력자도 누구나 세월 앞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건 결국 ‘세월을 아끼라’는 의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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