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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작은 별, 세계 장애인 복지에 희망을!

양평, 고(故) 강영우 박사의 뜻과 정신 기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 추진

 

최근 양평군은 이미 고인이 된 양평지역 출신인 강영우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2013년에는 고인의 유품을 기증받아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에 전시하고 고인의 생가 터에 표석을 세워 추모의 공간을 마련했으며 지난 2014년 10월 기념사업회 창립, 올해 12월 교육관 건립과 함께 강 박사의 흉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강영우 박사는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이자 한국계 최초 미국 백안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역임했다.

강 박사는 1944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나 13세 나이에 축구시합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실명선고를 받고 맹인이라는 장애는 안게 되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강 박사는 실명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어머니까지 세상에서 떠나보내게 됐다. 생활고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누나마저 과로에 의해 세상을 떠나자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은 철물점의 점원, 여동생은 고아원, 고인은 양평의 시골교회로 뿔뿔이 흩어지는 절망을 겪게 된다.

이런 불우한 삶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았던 강 박사는 같은 또래보다 5년 늦게 맹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맹학교를 졸업하면 주로 안마사나 점쟁이로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강 박사는 장애의 삶을 뛰어넘고자 더욱 학업에 매진해 시각장애인으로서 최초로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진학하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로타리재단 장학생에 선발된 강영우 박사는 한미재단과 국제로타리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의 길을 오르게 되었고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심리학 석사, 교육학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인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가 된다.

이후 1977년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특임교수, 1992년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창립회장, 1996년 루즈벨트재단 고문 및 UN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1998년 굿월인더스트리 국제본부 이사를 거쳐 한국인 최초 미국 4성 장군의 직위에 해당하는 백안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에 오른다.

그리고 그는 2000년 미국저명인사사전, 2001년 세계인명사전, 2006년 루즈밸트재단 선정 세계를 움직이는 위인 127인에 등재된 것은 물론, 1997년 자랑스러운 재외동포상, 2002년 아시아계 미국인 총연맹 공로상, 2007년 연세대학교 동문회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2008년 피츠버그대학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상 등을 수상했다.

아울러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영광’, ‘지혜가 이끄는 삶’,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 등 13종의 저술 및 방송활동과 2002년 양평군 강연, 2008년 UN본부연설, 2009년 청와대 및 국회강연 등 강연과 연설로 국제·국내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강 박사가 있기까지는 또 다른 공로자가 있었다. 바로 석은옥 여사다. 석 여사는 강 박사의 맹학교 시절 자원봉사자로 처음 만나 온갖 편견을 넘어 강영우 박사의 뒷바라지를 해줬고, 이 둘은 곧 결혼을 하게 된다. 원래 석은옥 여사의 본명은 석경숙으로, 석은옥이란 이름은 결혼기념 반지를 대신해 강영우 박사가 선물했던, 자신이 살고자 했던 미래의 비전이었다고 한다.

“석(石)의 시대 10년은 돌밭을 걸어가는 것 같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시대이며, 은(銀)의 시대 10년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녀를 기르며 공통된 이상을 구현해 나가는 시대, 옥(玉)은 사회에 봉사하는 시대”를 뜻하는 것으로, 석(石)의 시대부터 옥(玉)의 시대까지 인생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실제로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가난한 맹인 고아 소년에서 봉사를 받는 삶이 아닌 봉사하는 삶을 꿈꾸고 누군가에게 기적과 같은 삶이지만 실천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고(故) 강영우 박사.

이후 캐네디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역대 대통령만 8명이 포함돼 있고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루즈벨트재단이 선정한 127명의 공로자에 포함됐던 강 박사는 췌장암을 진단받아 2012년 68세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고인이 될 때에도 국제로타리재단 평화센터 평화장학금 25만달러(한화 약 2억9천만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실천하며 마지막까지 세계인들의 가슴에 희망과 사랑을 심어줬다.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어 좌절을 희망으로, 시련을 영광으로, 한사람의 삶을 통해 인류에게 인생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삶을 교훈을 줬으며 대한민국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고 세계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던 양평의 작은 별 ‘고(故) 강영우 박사’.

이런 고인의 뜻과 정신을 후세에 전승하고자 김선교 양평군수는 향후 단기적으로 ▲강영우 박사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구축 ▲시각장애인촬영대회 개최 ▲특별기획전 ‘희망을 보는 소년’ 강영우 전시회 개최 ▲강영우 박사 애니메이션 제작 ▲강영우 박사 기념 인권 웅변대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김 군수는 장기적으로 강영우 박사 기념사업회 사단법인 등록과 세계청소년수련센터를 건립해 고(故) 강영우 박사의 생전의 뜻인 ‘사회적 약자와 청소년들에게 주는 희망의 꿈’을 군정을 통해 펼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글ㅣ김영복 기자 kyb@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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