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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요즘 정치인들 속내를 들여다 보면

 

30년 지기 회사동료가 있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다른 사업을 하고 있지만 기자 시절 사내에선 꽤나 유명했다. 취재와 기사 발굴로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라 인맥을 형성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였다. 그 친구의 방법은 이랬다. 출신학교와 고향을 연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 머물렀던 연고지까지 활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새로 발령받은 출입처 기관장 고향이 대구라고 치자. 그러면 그는 대구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자신의 연고성을 최대한 내세워 어떻게든지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기관장을 통해 대구 사람들을 만나고 친목 모임에도 참석하고, 그들을 맨파워로 삼는, 시쳇말로 ‘사람 엮는 데’ 탁월했다.

국회를 출입처로 삼았을 땐 더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사람에겐 ‘우리 편’이라며 무한 신뢰를 보이는 것이 정치판인 까닭에 그의 ‘갖다 붙이기식’ 연고 찾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내 편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 하에 아내 고향에다 친구·사돈의 학연, 심지어 학교 다닐 때 자주 지나다니던 지역까지 활용(?)할 정도였다. 덕분에 그 친구는 항상 바빴다.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았고 한때는 회사 내 정치권 정보통으로 인정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연결된 친구의 주위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본인의 사람 됨됨이와 진솔함을 바탕으로 한 인맥 형성이 아니어서였다. 요즘도 가끔 만나는 친구의 푸념 중 하나도 이러한 아쉬움의 토로다. 그러면서 좀 더 진솔한 사람 사귀기가 됐더라면 큰 재산일 텐데 하며 후회를 덧붙이기도 한다. 지금도 선후배들은 그 친구의 고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렴풋이 ‘거기 아닌가’ 할 뿐이다. 평소 하도 많이 연고지를 가져다 대는 바람에 헷갈려서다.

최근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을 보며 이 친구 생각이 불현듯 난다. 지난 연말 인천 연수구에 출마를 선언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한 술자리에서 제창한 건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명 ‘누나 언니’ 건배사다. 민 전 대변인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술잔을 들고 ‘누나’라고 선창하면 여러분은 ‘언니’라 화답해 달라고 해서 그랬다. 여기서 누나는 ‘누가 나의 편인가’의 약자이고, 언니는 ‘언제나 니(네)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난해 초부터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누나 언니 건배사는 친박 비박 원박 등 ‘진박’ 논란이 거센 대구 경북지역 연말 술자리에서 공공연히 등장했던 건배사였다. 지금은 정치의 계절을 맞아 남쪽부터 북상, 수도권 여기저기 정치인 모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덩달아 일반 술자리에서도 세태를 반영한 익숙한 건배사로 자리 잡았다. 모두가 정치인들의 공(?)이다. 하지만 씁쓸하다. 왜 하필 ‘편 가르기’를 동원한 ‘우리 편 만들기인가’ 때문이다. 물론 자리에 모인 사람끼리 힘든 세상을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살아가자는 애교 섞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해왔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안 그렇다. 함께 도와가며 선하게 살자는 의미보다는 지지자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노하우이기도한 이 같은 연고주의는 내놓는 정책과 공약마저 미사여구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다. 선거 공보 또한 장식용으로 남아있게 한다.

그런데도 사돈네 팔촌의 혈연관계로 묶여야 표를 주는 심리가 있다고 믿는 게 정치인들이다. 초·중등 학연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연결고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투표할 때는 거의가 감성적으로 흐른다는 심리도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안다. 그런 면에선 심리 전문가 뺨칠 정도다. 심지어 외모가 표 모으는 데 큰 작용을 하고 잘 생긴 후보한테 표를 던진다고 해서 정치인 성형도 보편화된 세상이니 새삼 무엇을 말하겠는가.

어찌 보면 이런 정치인을 키운 것은 유권자들이다. 속된 말로 ‘허우대가 멀쩡한’ 외모를 앞세우고 지연 학연 혈연 등 연고주의를 무기로 접근하는 정치인들에게 매번 속아 넘어간 결과이기도 하다. 편 가르기를 바탕으로 한 지지 호소는 극단적으로 말해 자기이익 지키기나 다름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처럼 오로지 내편만을 만들려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정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소신과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과 대안이 실종된 작금의 정치판도 사실 여기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구 획정과 관계없이 20대 총선 출마 예상자들의 보폭이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는 요즘이다. 더불어 유권자들의 혜안(慧眼)도 열렸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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