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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가끔 한번씩 ‘멍’을 때려보자

 

잠에서 막 깨 일어나 앉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해 짓는 ‘멍~’한 표정.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이럴 땐 아무 생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이처럼 멍하니 있는 것을 아주 부정적으로 여겨왔다. 심지어 이런 사람을 빗대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고 해서 흐리멍덩하다느니, 자극에 대한 반응이 무디고 어리벙벙하다고 해 멍청하다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뇌 과학이나 정신의학계에서는 ‘멍 때리는’ 일이야말로 뇌나 정신 건강에 매우 좋다고 해왔다. 오히려 창조성이 더 높아져 의외의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나친 집착이나 불필요한 생각에서 풀려난 뇌가 새로운 발상을 해낸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멍 때리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놀라운 실험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다. 내용은 이랬다. 직장인 남녀에게 각각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주고 생소한 용어들을 15분 동안 검색하게 했다. 그리고 곧바로 30개 단어가 적힌 종이를 주고 1분 동안 외우게 한 뒤 얼마나 외웠는지 적게 했다. 다음엔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거두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이른바 멍 때리도록 부탁했다. 그 후 마찬가지 방법으로 곧바로 기억력을 측정해봤다는 것이다. 결과는 이때 적어낸 단어의 수가 심각한 생각을 하고 난 뒤보다 남녀 모두 4개씩 많았다고 한다. 좀 쉬고 난 다음에는 약간 머리가 비워진 느낌이 들어서 첫 번째보다는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게 이유다.

흥미로움이 더해져 멍 때리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그랬더니 다양한 내용들이 나왔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게 더 많았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선 소위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내용과 함께 9살 초등학생이 1위를 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한 전문의는 시간 날 때마다 적극적으로 ‘멍’을 때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넋을 놓고 앉아있는 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며 오히려 머리가 휴식하고 생각을 재정비하는 창조의 시간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예도 들었다. “날마다 연구에 여념이 없던 아르키메데스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했다. 그는 바쁜 일정에 잠시 피곤한 몸을 욕조에 누이고 멍하니 있었다. 무념무상의 몸은 물에 흔들거렸다. 피곤한 몸을 물에 담그고 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욕조 밖으로 넘치는 물이었다. 그는 흘러넘치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현듯 ‘유레카’라고 소리쳤다. 그가 ‘멍 때리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부력의 법칙이었다. 정말 멍해졌던 그는 부끄러움도 잊고 발가벗은 채 욕탕을 뛰어다녔다. 정원에 앉아 멍하니 사과나무를 보고 있던 뉴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정원은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을 내려놓고 그냥 멍한 상태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기에 알맞았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풍경이었다. 다른 생각과 고민을 비워내자 그의 머릿속으로 떨어지는 사과가 그대로 들어왔다. 중력의 법칙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우리는 일상 속에서 뇌에 관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들어 왔다. 그중 하나가 뇌의 휴식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뇌가 휴식을 취할 때, 뇌는 스스로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정리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정보와 경험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돼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할 여지가 적어진다. 그렇게 되면 굳어진 뇌는 더 이상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등등. 평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듯, 스트레스에 찌든 뇌를 이완시키려면 같은 방법으로 뇌를 스트레칭 시켜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멍 때리기라는 의학계의 정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특히 그렇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문득 영감을 얻듯이 뇌가 휴식하는 동안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를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매일 아침 멍하니 앉아 하루를 시작하고,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도 멍 때리며 산책을 자주 즐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같은 내용에 비추어 ‘멍 때리기’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나야 하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현대인들에겐 꼭 필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가끔 한번씩 ‘멍’을 때려 보자. 혹시 그 과정에서 험한 세상을 이겨나갈 묘책과 묘수가 등장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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