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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왠지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병치레 하지 말고 신바람 나게 사는 해가 되길….’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새해 덕담을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하고도 사흘이다. 만물이 얼어붙고 매서운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 깊은 겨울 한가운데에서 그 새 입춘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시일이 빨리 지나가며 계절 또한 한 발 앞서는 것 같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라고 했던 속담이 요즘 같으면 실감난다. 연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빛은 보이지 않고 덩달아 마음속 겨울도 녹을 기미가 없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금세 녹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세월이란 본디 멈춤을 허락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조만간 ‘어느 틈엔가 마음속에 살포시 들어앉는 사랑’처럼 봄도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올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무겁다. 가슴속 묵은 먼지들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시절을 맞으려 해도 쉽지 않아서다. 우선 코앞으로 다가온 설이 먼저 마음을 짓누른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행사인데도 다가오는 무게감이 영 가벼워지질 않는다. 모레부터 시작되는 연휴도 달갑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와 별 다르지 않게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만나는 것도 부담이다. 해마다 수없이 들어온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매년 새삼스럽게 들리는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두의 마음이 이 같지는 않다. 기다려지고 설레는 사람도 많다. 고향에서 또는 대처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끈끈한 가족애를 다질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가정이 모두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탓할 명분도 없다. 모두 당사자인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입춘이 온 것처럼 마음을 싱숭생숭케 했던 설도 세월이 놔두질 않고 보낼 것이다. 설이 지나면 본격적 봄기운이 대지를 덮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게 분명하다. 자연은 지난해와 다름없이 겨우내 묻어둔 먼지를 털고 기지개를 켤 것이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럴 준비가 덜된 듯하다. 나부터도 그렇다.

살다보면 생기는 것이 우리 마음속의 먼지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집안 구석구석 뽀얗게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도 이런저런 좋지 못한 먼지가 쌓여 더러운 때가 덮인다. 미워할 까닭이 없는데도 미워하고, 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남의 일에 질투한다. 남보다는 나를 우선으로 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상대가 나에게 해주지 않는다고 원망도 한다. 배려보다 욕심을 앞세우며 귀찮은 일이면 무조건 피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말에 다 털어버리고 연초에 ‘올핸 이런 것들을 없애야겠다’고 작심했지만 지금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 아니 한 달이 갓 넘었지만 세상을 살아온 연륜만큼 켜켜이 쌓여있다. 그런데도 마음의 문은 열지 않으려 한다. 활짝 열고 쌓인 먼지를 봄바람에 훌훌 털어버릴 준비를 하면 좋으련만 너나없이 창문 고리를 풀 생각이 없는 듯하다.

연초, 혼용무도(昏庸無道)했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 일 년도 생활이 다르지 않다고 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그리고 예상은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1월 한 달을 보낸 지금으로서는 말이다. 이러다간 지난해 겪은 많은 슬픔과 고통이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앞선다. 연초부터 미래의 희망이라는 어린이들을 볼모로 잡고, 경제를 살린다는 정부는 국회에 발목을 잡히고, 이를 풀어야 하는 국정 리더십은 실종돼 더욱 그렇다. 아무리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은 언제나 우리 곁에 찾아오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또한 사정이 이러하니 봄은 오고 있으나 이를 맞이할 국민의 마음이 열릴 턱이 있나. 19대 국회는 물론이고 대통령마저 역대 최하위의 지지도를 기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월 총선에 대비,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이전투구 하는 정치권만 ‘자신들의 리그’를 치르느라 분주하고 요란한 소리가 연일 끊이지 않지만 정작 선거 주체인 국민들 사이에선 선거에 관심이 유독 적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입춘을 흔히들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새 희망의 절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심정이면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희망이 보여야 마음의 문을 열든지 말든지 하지. 벌써부터 설날 모인 가족들과 무슨 얘기를 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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