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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이벤트성 대책으론 안 된다

 

어린 시절, 여러 번 봤던 기억이 있다. 신촌 주변 노고산으로 쏘다니느라 때를 넘겨 어스름 저녁이 돼서야 돌아간 집 근처 골목, 의기투합해 같이 놀던 또래 중 한 명이 성난 엄마로부터 사정없이 등짝을 맞으며 몸을 꼬던 모습이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양손으로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또래를 향해 ‘공부도 안 하고, 밥 처먹을 시간이 되도 안 오면 어쩌란 말이냐. 이놈의 시키 뭐가 되려고…’ 하며 인정사정 보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던 그 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도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그 애는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밥을 굶었다. 먹고 살기 힘든 형편도 그랬지만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를 들어서 체벌을 가한 것이다. 가끔 그 애는 하의를 벗은 채 맨발로 영하의 추운겨울 아침 대문 앞에 서있기도 했다.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두고 계모라는 둥 동네에선 여러 얘기가 분분했다. 바로 밑 두 살 터울의 딸에게 집안 허드렛일을 시키며 구박을 일삼아 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그 애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는 자리엔 으레 나타나 ‘자식 교육을 위해선 패야 한다’는 등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떠벌이기 일쑤였다. 결석을 자주 하던 그 애는 2년 뒤 학교를 그만 뒀다. 아버지의 리어카 행상을 돕기 위해서였다.

물론 당시에 이 같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고, 또 비일비재 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라면 한두 번쯤 경험해 본 일이기도 하다. 아이에 대한 인권의식은 고사하고,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자식에 대한 죄의식이 결여된 성인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애들을 때리고 벌주는 일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던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인지 나 또한 자식을 키우며 ‘사랑의 매’라는 형식으로 체벌을 가한 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뒤늦게 마음을 고쳐먹고 교육 방법을 바꿨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고, 아동학대 뉴스가 들려온다. 유기나 방법도 예전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잔인하다. 기성세대로서 차마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럽고 끔찍한 일이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후 냉동실에 넣어두고 15평 방안에서 4년 가까이 딸을 데리고 지낸 엽기 부부도 잡혔다. 또 다른 아이는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가해자는 목사였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에는 딸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까지 한 어머니도 붙잡혔다.

최근 밝혀진 아동학대의 끔찍한 결말을 보면서 더욱 심란해진다. 자신의 어린 자녀를 때려서 죽인 부모들 역시 처음엔 피해자였을 텐데, 어느 순간 악마가 되어버린 그들의 행태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어린 자녀를 죽이고도 태연한 그들의 모습, 이 사회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 같아 소름마저 돋는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새로운 일처럼 요란 떨지만 실제론 매년 1만 건 이상 발생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TV 육아 예능 프로그램과는 딴판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2014년 한 해 아동학대로 인정된 피해 사례는 1만5025건에 이른다. 이 중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아동학대로 숨진 어린이는 126명이나 된다. 이중 81.5%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가정은 잠재적인 역기능 가정이라는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은 육체적 약자인 아이는 돌봄 주체인 부모의 폭력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 문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범죄다. 따라서 일부에선 그들을 반사회 성향의 범죄자 사이코패스 또는 돌연변이 괴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법을 강화해도 노골적인 폭력이든 은밀한 학대든, 가족잔혹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오는 26일 아동학대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대책이름이 ‘아기새’라고 한다. ‘아동학대 없는 세상 기댈수 있도록 새누리당이 지켜준다’는 말의 줄임말이라나. 국가 차원의 아동학대 감시는 사회적 관심과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데 이건 뭔 이벤트인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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