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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복지부동, 복지안동, 낙지부동

 

“南山村翁養?奴(남산촌옹양리노·남산골 늙은이 고양이를 기르는데)”로 시작하는 다산 정약용의 이노행(?奴行)이란 우화시(寓話詩)가 있다.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쥐, 그런 쥐를 잡으라고 기른 고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쥐들과 공모해 더 큰 행패를 부린다는 내용이 담긴 이 한시는 공무원들이 비리에 연루돼 사회적 파장이 컸을 때 곧잘 인용되는 고전 시다.

다음 문장은 이렇다. “해가 묵자 요사하고 흉악하기 늙은 여우로세/밤마다 초당에서 두었던 고기 훔쳐 먹고/항아리 단지 뒤집고 잔과 술병까지 뒤진다네/어둠 타고 살금살금 교활한 짓 제멋대로 다 하다가/문 열고 소리치면 형체 없이 사라지네/등불을 켜고 비춰 보면 더러운 자국 널려 있고/이빨자국 나 있는 찌꺼기만 낭자하네(중략)/너에게 한 쌍의 반짝이는 황금 눈을 주어/칠흑 같은 밤에도 올빼미처럼 벼룩도 잡게 했지/너에게 보라매같이 쇠발톱도 주었고/너에게 호랑이 같은 톱날 이빨도 주었네.(중략)/그런데 너는 지금 쥐 한 마리 잡지 않고/도리어 이에 스스로 도둑질을 하는구나/쥐는 원래 좀도둑이라 그 피해도 적지마는/너는 지금 힘도 세고 권세도 높고 마음까지 거칠어/쥐들이 못 하는 짓 너는 맘대로 하니/처마 타고 뚜껑 열고 담장까지 무너뜨리네.” 여기서 남산골 늙은이는 일반 백성, 쥐는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는 수령과 아전, 고양이는 감사(監司)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관인들이 서로 결탁, 오히려 비리와 수탈을 일삼던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의 행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수단과 방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분야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동안 고강도 사정과 비리척결로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일상사처럼 일어나는 공무원들의 각종 부패 스캔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때문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공직 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 삼을 정도였다. 그 결과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상태다.

하지만 비리와 부패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거듭 났을까.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인허가 관련 공무원을 비롯한 많은 공직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뚜렷한 이유 없이 하지 않아 민생에 피해를 주는 이른바 복지부동으로 진화해서다. 공무원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가 공직사회의 적폐로 거론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 괜히 일을 벌여 책임지기보다는 차라리 일을 안 하는 게 낫다는 복지부동이란 말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다. 오죽 만연했으면 땅에 납작 엎드려 눈만 굴린다는 ‘복지안동’, 낙지처럼 펄 속에 숨는다는 ‘낙지부동’이란 신조어까지 나왔겠는가. ‘철밥통’ ‘신(神)마저 탐내는 직장’ ‘영원한 갑’ 등등 공무원을 빗댄 조어들은 이제 고전이다. 이들을 가리켜 공직사회의 ‘좀비’라는 말까지 나왔다. 관료적 조직 안에서 터득한 책임 회피와 처세술을 바탕으로 직장에 다니는 것 자체에 만족하며 소속된 조직의 발전이나 자기계발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시간을 때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법적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인허가를 거부하고, 장기간 서류를 방치하는 등의 갑질 행위로 민원인에게 고통을 주고 국가경쟁력마저 갉아먹는 이 같은 사례는 과거와는 또 다른 공무원의 횡포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외부 발탁 정치인 장관을 공공연히 물 먹여 퇴출시키고, 규제를 풀자는 민선 단체장의 업무시달조차 허투루 대응하면서 기관장 길들이기와 자신의 직분을 고수하기 일쑤다. 상식궤도에서 벗어난 관료사회의 이 같은 사례는 수도 없다. 창피해서 외부 노출을 꺼려하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공공기관의 개혁 논의가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공무원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음지에서 과다한 업무량에도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는 성실한 공무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지부동’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인허가나 민원처리 문제로 관계부처의 공무원을 상대로 마음고생을 해본 사람들이면 더 잘 안다.

이런 공무원들을 퇴출시키고자 얼마 전 정부가 ‘회초리’를 들었다. 부작위나 직무태만 등 소극행정으로 국민에게 손해를 끼친 공무원에게 최고 파면의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게 공무원법을 고친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번엔 잘 될까’ ‘결국 또 쇼가 아닐까’ 하며 반신반의하고 있다. 국민의 생각이 틀렸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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