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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4월이 잔인한 유권자와 후보

 

어제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파트 화단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일부 만개한 연분홍 꽃잎은 눈처럼 떨어진다. 매년 보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새롭고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벚꽃을 보면 덩달아 생각나는 꽃이 있다. 배꽃이다. 시골서 과수원을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흰 배꽃의 기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배꽃이 만발할 무렵이면 온천지가 새하얗게 변하는 풍경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달빛까지 내리는 저녁이면 눈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워 어린 나이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기 일쑤였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있는데 선거 로고송이 들렸다. ‘아침부터 웬 유세차량’ 하면서 불현듯 선거에 관한 옛 생각이 되살아났다.

대강 따져도 수십 년이 족히 지났지만 당시도 아마 이때쯤으로 기억된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보가 배꽃이 만발한 우리집 근처 과수원을 찾았다. 물론 거기엔 배꽃을 솎아낸다는 구실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여럿 몰려 있었다. 그는 그런 아주머니들에게 ‘누구누구 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라며 연신 허리를 굽히며 한 표를 부탁하고 이내 동네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과수원이 많은 동네라 인사치레 차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들이 모여 있는 회관으로 간 것이다. 잠시 방문이었지만 동네를 떠날 때 후보가 강조했던 호소도 생각난다. “여러분- 바람에 떨어지는 저 배 꽃잎만큼 표를 주실 거죠.” 배꽃이 표로 보이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꽃잎을 표와 연관시킨 그의 발상이 기발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잠시 뒤 조간신문을 집어 들어 선거 기사를 읽는데 집사람이 “국회의원선거는 왜 4월에 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 평소 관심두지 않았던 내용이라 대답을 못했다. 귀찮은 마음에 “별걸 다 궁금해 한다”며 얼버무려 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나 또한 의구심이 생겼다. 명색이 언론인인데 최소한, 역사나 배경 혹은 의미에 대해 한 가지라도 설명해 주어야겠다는 욕심에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 보았으나 원하는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질문도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국회의원선거를 왜 4월에 하는지 알아보긴 했는데… 선거법에 명시되어 있어 그렇다네”라며 궁색한 답변을 해 줬다. 그러자 집사람이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며? 요즘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죽기 살기로 선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왜 선거를 4월에 치러 가뜩이나 잔인한 4월을 더욱 잔인하게 만드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본 것인데… 너무 엇나가셨어.” 20대 총선에 나선 후보와 정당들에게 잔인한 4월? 집사람 얘기를 듣고 보니 전혀 엉뚱한 발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각 정당이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선거 중반 상황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 듯싶어 “아-” 하며 집사람을 다시 쳐다봤다. 그러면서 후보자뿐만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잔인한 4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인 엘리어트가 잔인한 4월을 표현했던 것은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단순히 계절적인 의미를 넘어 1차 세계대전 후 황무지와 같이 삭막해진 서구인들의 정신상태를 상징했다. 또 사람들이 수없이 죽고 도시가 파괴된 전쟁의 비참함 속에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무한한 이기심과 탐욕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간접 표현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20대 총선 출마자 중 이러한 이기심과 탐욕으로 넘쳐나는 후보가 적지 않음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이 4월을 잔인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당리당략에 매몰돼 선거판을 자신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버린 정치인들. 그들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상심하고 있을까. 실망하고 분노하며 4월이 잔인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이 같은 병폐로 인해 아마도 잔인함의 체감 강도는 최고조일지도 모른다. 4월의 잔인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두고두고 그 여파가 증폭될 것으로 보여서다.

봄은 사계절의 시작이고 희망, 새로움, 젊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4월은 그 중심이다. 꽃이 지닌 향기에 물들게 하고, 온 세상에 향기가 퍼지게 하는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꽃과 움트는 새싹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고 미래를 꿈꿔야할 그런 4월이 잔인함으로 점철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비록 4년마다이지만 그놈의 선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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