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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오만과 교만 그리고 불통

 

엊그제 모처럼 회사 근처 서점에 들렀다. 96세 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집을 사기 위해서였다. 최근 언론에서 1995년 각각 출간됐다가 절판된 김 교수의 책 두 권 ‘예수’와 ‘어떻게 믿을 것인가’가 재출간된 후 인기가 높다는 기사를 읽고 그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무엇이 100세를 바라보는 노(老)철학자의 15~20년 전 저작을 부활시켰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 책을 찾았지만 전문서점이 아닌지 없었다.

아쉬움을 거두며 베스트셀러 코너의 이책 저책을 뒤적이는데 한켠에 놓여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심리학의 고전 한비자(韓非子)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라는 부제가 있는 ‘한비자의 인생수업’이란 책이다. 얼마 전 재주복주(載舟覆舟)라는 칼럼을 쓰며 한비자의 제왕편을 뒤져본 기억이 나 ‘꿩 대신 닭(?)’을 선택해 구입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이랬다. ‘한비자’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교훈들을 선별해 현대적으로 정리하고, 무한경쟁 사회 속으로 들어가려는 청년들과 리더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우고,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 등 다양한 지침들을 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고전을 재해석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글을 쓰는 나로서는 인용할 대목도 많아 더욱 그랬다.

그중 하나가 군주와 신하, 백성이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 나라를 사랑하며 나아가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나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간신이 득세하면 그것은 곧 망조다” “군주라면 신하들의 면면을 살피며 오늘 내 삶에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나라가 좀먹게 될 것”이라는 대목은 20대 총선이 끝난 작금의 상황이 오버랩 되어 큰 공감이 갔다. 리더가 형편없을 때일수록 왜 한비자가 인기인가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한비자는 제왕학의 창시자답게 일찌감치 군주라면 사람의 진정한 마음, 즉 본심(本心)을 읽는 법을 알아야 된다고 설파했다. 이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군주에게 중신이란 매우 위험한 인물들”이라 전제하고 “측신들은 틈만 나면 군주의 눈을 속이고 사리를 취하는 등 나쁜 일을 도모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군주의 자리까지 넘보기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따라서 신하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 건 군주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신하들의 본심을 읽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잘보고 똑똑히 듣는다’는 관청법(觀廳法), ‘하나하나 다 들어보라’는 일청법(一廳法),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본심을 들으라’는 협지법(挾智法), ‘사실과 다른 말을 해서 본심을 떠보라’는 도언법(倒言法),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득을 볼 자의 말을 먼저 들어보라’는 반찰법(反察法)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비자가 설파한 사람의 본심을 읽는 방법이란 것이 어디 군주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신하들 또한 국민들의 본심을 읽는데도 필수적 덕목이다. 요즘 말로 치면 대통령뿐만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정치인들을 비롯 나랏일을 하는 고위 공직자와 회사를 이끄는 최고 경영자, 사회적 중심을 잡아야 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조차 못하면서 국정을 운영한다면 나라는 제대로 돌아갈리 없고, 민심이 어떤지 모르면서 정치를 한다면 국민의 삶이 나아질리 없어서 더욱 그렇다.

이 같은 필수적 덕목이 사라진 마음엔 본심을 더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오만과 교만, 불통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국민이 분노해 군주와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결국에 가서는 복주(覆舟)의 쓴맛을 보게 마련이다.

오만과 교만, 불통이 큰 손해와 함께 불행을 가져오는 이유는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여 잘못이 있어도 그길로 가거나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여 남의 지혜를 듣지 않으니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니 다른 사람의 반발을 사게 되고 결국에는 그로인해 망할 수밖에 없다. 오만과 교만은 패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20세기 철학자 포버는 열린사회의 적이 바로 독재라 했다. 독재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지극히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이다. 병교필패(兵驕必敗)라는 말도 있다. 병사가 자만하거나 교만하면 반드시 패한다는 뜻인데 하물며 군주와 신하가 그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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