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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김영란법’의 행간(行間)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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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10일  21:26:30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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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자(大記者)

30년 전 초년 기자시절 딸이 셋인 한 공무원이 ‘기세경’에게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불경(佛經)을 말하는 줄 알았다. 기자와 세무공무원 경찰이라는 의미란다. 그 분이 지어낸 말인지는 몰라도 그때 ‘記稅警’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고위 지방공무원이었던 그 분에게는 이 세 직업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술 더 떠 넌센스 퀴즈를 냈다. “기자와 경찰, 세무공무원 이렇게 셋이서 밥 먹으면 누가 밥값을 낼까?” 답은 ‘음식점 주인’이라 했다. 그러면서 기자가 유일하게 밥 사는 사람은 자식들의 담임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생전에 아버님조차 고등학교 선생을 하던 내가 기자가 됐을 때 내심 걱정이 많으셨다. 혹시라도 막내아들이 여기저기서 욕이나 먹지 않을까 적이 우려되셨던 모양이다. 정년퇴임 후에도 후배들에게 나의 행동거지를 면밀하게 취재(?)해보시고는 마음을 놓으셔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이완구 전 총리는 후보자 시절 기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이번에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 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라고 했다. 이렇게 얻어(?)먹기만 한다는 개그의 소재 ‘기자와 선생들’도 김영란법에 포함되면서 이젠 실제상황이 됐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느니, 선생들을 촌지 도둑으로 몰아 인격을 모독한다느니 말도 많았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잘한 일이다. 얻어먹지 않은 기자나 선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도 얻어먹기도 했지만 사기도 했다. 선생할 때나 기자생활 30년동안 학부형이나 출입처의 취재원들에게 밥 사달라고 조른 적은 한번도 없다. ‘김영란법’에 자존심은 사실 구기지만 철저하게 시행했으면 좋겠다.

김영란법의 취지와 행간에 담겨 있는 의미는 오랜 관행들을 타파해 부패없는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교사, 나아가 검찰과 경찰 등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없다. 스스로가 정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법으로라도 규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밥 먹는 것, 선물하는 것조차 규제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부패는 이처럼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법인카드를 이용한 기업들의 접대비 총액은 2003년 5조 원에서 지난 2011년 8조3천여억 원으로 늘어났다. 룸살롱과 단란주점에서 쓴 것만 몇 조원이 넘는다. 한 자리에서 수백만원이 넘는 술값을 누구에게, 왜 지불했겠는가. 이제 접대문화와 편법, 그리고 로비가 사라져야 진정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게 ‘김영란법’의 취지다.

물론 축산농가 화훼농가를 비롯한 일부 업종이 그럴 수는 있다. 이들에게는 맞아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관행과 부패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부패방지법인 ‘김영란법’이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30000원법’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그러나 꼭 접대하면서 대화할 일이 있다면 3만원이면 충분하다. 따뜻한 된장찌개 국물이면 어떤가. 고관대작이나 저명 인사들의 장례식을 가 보면 10만원이 넘는 3단 조화들이 즐비하다. 어떤 곳은 놓을 데가 없이 너무 많아 화환을 돌려보내고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힌 꼬리표만 달랑 걸어놓기도 한다. 이를 지켜보는 문상객들은 ‘아깝다’며 혀를 찬다. 결혼식도 그렇다. 축의금을 내려면 끝도 없는 줄을 길게 늘어서야 한다.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뇌물성의 두툼한 봉투를 내미는 이도 있다. 법에서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10만원으로 제한한 이유다. 요즘 간부 공무원들은 “8급, 9급 무서워 못 해먹겠다”고 한다. 편법과 부당한 지시가 안 통한다는 얘기다. 촌지주는 취재원, 촌지받는 기자도 거의 사라졌다. 점차 투명한 사회로 가는 중이다. 관련업계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소비위축보다 부패의 싹을 아예 잘라내는 게 국가적으로 더 시급하다. 투명한 사회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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